정재서 교수(중어중문학 전공)

중국 현대문학의 아버지 루쉰의 첫 소설, <광인일기>의 마지막은 “아이들을 구하라”는 절규로 끝난다. 봉건제도 하에서 신음하는 중국 인민에게 각성을 요구하면서 아직 때묻지 않은 아이들만이라도 과거의 악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로 나아갈 것을 희망한 것이다.


신화를 전공하는 필자는 요즘 루쉰과 같은 어조로 ‘아이들을 구하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다. 프랑스의 상상력 연구가 뒤랑이 이미 선언했듯이 오늘날 바야흐로 신화가 귀환하고 있다. 아이러니칼하게도 테크놀로지의 눈부신 발달은 허구의 상상력이 가시화될 수 있는 훌륭한 온상을 제공했다.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 포터> 시리즈가 70년대 쯤에 영화화됐다면 과연 지금처럼 성공할 수 있었을까? 아마 어려웠을 것이다. 도저히 당시의 기술이 상상력을 따라잡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어쨌든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등 이른바 문화산업에서는 다양하고 기발한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그런지 서점가를 가보면 상상력에 관한 책들이 범람하고 있다. 상상력 중에서 가장 근원적인 것은 신화다. 그런데 상상력과 신화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하지만 정작 돌아온 것은 <그리스 로마 신화>, <반지의 제왕>, <해리 포터> 시리즈 등 서양 신화와 마법담이지 동양신화나 도술 이야기가 아니다.

걱정스러운 것은 아이들의 머리를 온통 장악하고 있는 이들 서양의 상상력이다. 서양의 상상력도 알아둘 필요가 있으니 배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편식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만 몰두하다 보니 아이들은 예쁜 여신과 연애 이야기가 나오지 않으면 신화가 아닌 것으로 여겨 버린다. 한 특정한 지역의 신화를 표준으로 세계의 수많은 지역의 신화들을 배제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신화는 민족 문화의 원천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가 이처럼 일찌감치 아이들의 머리를 점령해 버린다면 향후 그 아이들은 서양 문화에 대해 무장해제나 다름없는 상태가 될 것이다. 바야흐로 세계화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우리는 제 1세계 혹은 미국에 의한 획일적 세계화를 우려하게 된다. 어떤 세계보다도 자유로울 것 같은 상상력의 세계 역시 예외는 아니다. 마치 맥도날드가 세계인의 입맛을 하나로 통일하듯이 지금의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자라난다면, 미래에는 ‘상상력의 맥도날드 제국’이 성립되지 않으리라고 누가 보장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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