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Karr)는 ‘역사란 무엇인가’ 에서 로빈슨 사건을 소개한다.

내 기억엔 어느 후미진 시골길에서 로빈슨은 밤에 담배를 사러 나왔다 과속 차량에 치여 죽는다.

이 경우 누구의 책임인가. 어두운 밤에 담배를 사러 나오지 않았다면 사고는 없지 않았을까? 조명을 더 밝게 행정적인 조치를 취했다면 참사를 막지 않았을까? 어쨌든 과속운전을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그 원인규명과 진단에 대해 획일적인 정답을 강요할 수는 없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사색의 자유가 있고, 또 오류를 범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식인들은 사회과학적 정합성을 담보하기 위해 방법론상의 논쟁을 벌였다.

카는 역사 해석에 있어 현재와의 연관성 속에서 구조적이고 결정론적인 요인을 보다 강조 했다.

포퍼(Popper)는 이를 역사적 법칙주의라 비판하며 사회 공학적 관점에서 인간행태에 대한 기능적·개방적 접근을 선호했다.

정치면은 뒤적이기도 꺼려하는 내게 3.12 탄핵사건은 이 한물 간 논쟁을 떠올리게 한다.

젊었을 땐 암울한 독재시대를 탄식하며 체제 변혁을 향한 정치적 욕구가 강렬했건만, 세월에 밀려 기성세대에 편입한 탓인지 전통적 가치와 이념은 내 생활 속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40대의 대체적인 모습일 것이다.

탄핵사유와 절차의 정당성에 대해서 논자마다 평가가 다를 것이고 각기 나름대로의 논리를 갖고 있을 것이다.

3.12를 접하며 필자는 카의 역사주의적 관점에서, 즉 다소 도식적이지만 과거와 현재의 대화과정에서 그 구조적 의미를 되새기고픈 충동이 일었다.

나는 3.12 사건과 89년도 3당 합당(이른바 보수대연합)의 역사적 의미가 유사하다고 진단한다.

모두 수구파와 개혁파의 충돌과정에서 나온 파열음이다.

이 말에 오해는 없길 바란다.

사회주의에 대해 인식 편차가 크고 제대로 된 담론이 없는 한국에서 보수·진보 개념은 혼선을 초래할 뿐이기에, 가치중립적 관점에서 기존 질서·기득권을 지키려는 ‘수구’와 새로운 환경·질서를 찾아 나서려는 ‘개혁’을 현상적으로 대비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3당 합당은 군부세력과의 결탁이고 3.12는 구세기 기득권 세력의 반격이다.

변화보다는 현상유지를 원한다.

이들에겐 시대의 화두인 정치개혁도 혼란일 뿐이다.

더 이상의 역사적 평가는 독자의 몫이다.

단 주관적인 판단인지 모르나, 두 사건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각이 많이 바뀌지 않았나 생각한다.

3당 합당 때는 안정희구세력을 적극적으로 대변한 보수언론의 영향과 지역감정이란 비이성적 사고에 매여 문제의 본질이 안 드러났다.

반면 3.12는 인터넷 등의 영향으로 정치개혁이라는 큰 대의명분에 동조한 국민 다수가 기존 정치권의 구태를 꿰뚫어 보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따라서 4월 선거는 특별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과거로의 회귀냐 미래로의 전진이냐의 갈림길이다.

선거에의 적극적 참여는 민주주의의 정언명령이자 시민의 의무다.

내 진단에 동조하는지 여부에 상관없이. 아무도 역사의 현장에서 도피할 권리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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