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영 교수(응급의학 전공)

1989년 우리 학교 의과대 졸업생인 사꾸라 라즈반다리씨가 그의 나라, 네팔에 도움의 손길을 달라고 요청했다. 이화의료 봉사단의 처음은 이렇게 시작됐다.

89년 김순회 교수(해부학 전공)를 단장으로 최기홍 교수(정형외과 전공)·이근후 교수(정신과 전공)가 전공의 2명과 학생6명을 이끌고 떠난 최초의 장정 이후, 90년~94년 한국장미회가 세운 한-네팔 친선병원 돌카병원 집중 방문하면서 한 지역의 의료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었다는 것은 큰 성과다.

그러나 92년 홍사옥 동문이 돌카병원으로 향하던 중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는 가슴 아픈 일도 있었다. 현지에 조성한 그의 추모공원에서 망자의 봉사정신을 기리는 것으로 그 아픔을 달래고 있다. 95년부터 7년간은 덩쿠타·포카라 등 네팔 내 10여 곳의 오지를 찾아다녔다. 이제 네팔에서는 이화라는 이름이 낯설지만은 않을거라 생각한다.

봉사단을 이끌던 이근후 교수가 2001년 정년퇴임하면서 이화 의료봉사단은 학교 공식 해외봉사활동으로 전환했고 많은 변화를 가졌다. 2001년 네팔·2003년 캄보디아·2004년 베트남까지 활동영역을 넓혔고, 의과대학 내 지역사회 보건의료 사업 위원회에 의료봉사 소위원회가 만들어져 많은 일들을 결정하고 추진할 수 있게 됐다. 또 학생처가 장학금 지원 등 물심양면으로 후원하면서 많은 이화인이 참여하게 됐고, 의료원도 교직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간호부와 약제과는 의료품과 약품을 전적으로 부담하고 의료진을 파견해 봉사단의 오늘을 가능케 해줬다. 이런 변화와 도움이 치밀한 계획을 세운 것도 아닌데 자연스레 얻어졌다는 것도 정말 감사할 일이다.

안팎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매년 예기치 못한 어려움이 생긴다. 올해도 조류독감이라는 불안과 위험을 극복해야 했다. 과연 이 많은 돈과 노력을 들여서 가는 의미가 있냐고 매년 묻지만, 다녀오고 나면 그래도 역시 잘 한일이라고 어김없이 답하곤 한다. 참여한 모두가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에게 말하듯, 또 내게 대답하듯 잘 갔다 왔다고 말하니 나 혼자 되풀이하는 문답은 아닌 듯싶다. “되로 주고 말로 받아 온다”는 이근후 교수의 말처럼 의료봉사의 기억들은 참여한 모든 이들의 인생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료봉사는 내가 보람을 얻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니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보람은 그저 덤이다. 이화 의료봉사단은 앞으로도 그들에게 정말로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기에 좀 더 발전한 모습으로 커갈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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