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司馬遷)은 친구 임안(任安)에게 보낸 편지에 자신의 『사기』 저술을 “궁천인지제 통고금지변(究天人之際 通古今之變), 즉 하늘과 사람의 관계를 궁구하고 고금의 변화를 꿰뚫어 이었다”고 요약했다.

사마천이 말한 통고금지변은 중국의 대표적인 유가경전의 하나인 『역경』에 나오는 “신농씨몰 황제·요·순작 통기변(神農氏沒 黃帝·堯·舜氏作 通其變):신농씨가 죽고 황제·요·순씨가 일어나서 그 변화를 꿰뚫어 이었다”에서 ‘통기변’을 그대로 계승한 것이다.

그래서 『사기』는 최초의 중국통사로서 삼황오제부터 한 무제에 이르는 중국역사를 자기 동일적인 하나의 체계로 완성한 불후의 역사서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사마천의 ‘통고금지변’은 ‘이질적이고 다양한 역사와 현상(變)이 이탈·변화하는 것을 막고 중심을 지향하도록 이끈다(通)’는 논리로 통기변을 계승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는 주변의 다양한 역사(變)를 ‘통(通)’의 원리에 따라 끊임없이 통합하고 수렴하도록 이끈다.

그리고 ‘교화(敎化)’나 ‘화이(華夷)’라는 명분으로 이를 정당화한다.

이른바 중국의 전통적인 중화주의다.

최근 중국에서 『고대중국고구려역사속론』이란 책이 출간됐는데 이는 중국 ‘동북공정’의 중요한 결과물 중 하나다.

책의 서론을 보면 그동안 남북한이 고구려역사 연구를 ‘정치적’으로 이용해왔고, 중국은 냉정한 과학정신으로 ‘학술적’인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정작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쪽은 중국이고 보면 ‘학술적’이란 개념과 ‘정치적’이란 개념이 갑자기 혼란스러워진다.

고구려역사를 중국역사에 편입하려는 작업은 이질적인 ‘변(變)’의 고구려역사를 ‘통(通)’의 원리에 따라 통합하고 수렴하려는 전통적인 ‘통기변’의식의 부활이기 때문이다.

동북공정은 학술이란 명분을 내세워 전통적인 중화주의를 오늘날의 용어로 담아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동북공정이야말로 그 이면에 최근 정치안정과 경제성장을 기반으로 과거의 논리(중화주의)를 복원하겠다는 중국의 ‘정치적’야심이 깔려 있다.

단재 신채호는 중국 고대 사책(史冊)에 나오는 열수나 패수를 오늘날 평양의 대동강이라 주장하는 중국인의 억지논리에 맞서기 위해 열악한 환경의 망명지에서 『조선사연구초』와 『조선상고사』를 저술해 조선의 옛 국경을 고증했다.

민족정기를 회복하기 위한 단재의 지난한 노력을 다시 명심하자. 고구려역사를 지켜내는 일은 학자만의 몫이 아니라 모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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