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학생들 사이에 미술사학에 관한 관심이 점점 커 가는 것 같다.

그런 추세에서 문화유산답사와 미술사학을 같은 궤도에 두는 사람들이 많고, 미술사학은 우아하게 즐기면서 하며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답사를 간다고 하면 너도나도 따라 나서려고 한다.

이 때마다 나는 제지하려고 바쁘다.

답사는 야유회의 성격을 띠어가고 유적이 무수한 무분별한 발자국에 폐허화되어 가는 것을 보면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미술사학에서 말하는 답사란 역사탐방이 아니다.

미술사학자들은 작품이나 유적의 원형을 중요시한다.

원형에서만 원래의 아름다움과 의미를 되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적과 작품은 조상의 얼이 응어리진 고귀한 것이기에 옷깃을 여미며 경건한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찾아가긴 해도 그 아름다움의 의미를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이에 야유회 같은 답사를 삼가고 미술사학자가 문제를 풀어내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훗날 연구를 이을 젊은 학자들에게도 기회를 주도록 원형유지에 힘써야 한다.

미술사학은 엄연히 인문학의 한 분야다.

취미로 하는 것이 아니다.

취미는 여가활용이다.

어떻게 학문을 여가활용의 수단으로 삼아 미술사학의 위상을 낮추려 드는가. 또 미술사는 ‘재미있다’고 한다.

물론 좋은 이야기다.

누구나 흥미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미술사를 학문으로 연구한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미술사학 뿐만 아니라 어느 학문이든 지식을 습득하는 데는 대체로 과학적 방법과 철학적 방법과 신비적 방법 등 세 가지 방법이 있다.

‘과학적(科學的) 방법’은 과학적으로 검증이 되어서 하나의 사실로 굳어진 것, 그래서 우리가 흔히 객관적이라고 이름 붙이는 지식들, 누구에게나 물어도 똑같은 대답이 나오는 것들로 대체로 교과서나 개설서에 실려있는 지식들이다.

그러한 것은 논증의 과정을 거쳐 도출된다.

‘철학적(哲學的) 방법’은 어떤 객관적 사실이 있을 때 다시 한번 물어보는 것이다.

왜 그런가, 어떻게 그런가, 의문을 내고 사색하고 의미와 상징을 추구하여 해석을 시도한다.

‘신비적(神秘的) 방법’은 일종의 종교적 체험을 통해서 지식을 추구하는 것이어서 개인적인 면이 강하다.

마찬가지로 미술사학을 물론 과학적인 방법과 철학적인 방법으로 연구할 수 있지만 연구대상이 예술작품이기에 예술세계로 들어가서 체험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신비한 방법이란 체험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런 점에서 예술과 종교는 동질성을 띤다.

그런데 이상의 세 가지는 단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체험의 바탕 위에 논증과 해석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미술사학자는 영혼의 세계로 떠나는 가슴 설레는 탐험가와 같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