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년 처음으로 한일 독문학자 대회가 서울에서 열린 이래 독문학계는 독일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독문학자들과의 교류를 하게 됐다.

지난 10년동안 내가 중국과 일본에 열번 정도 다녀오게 된 것도 그런 교류의 차원이었다.

그러던 것이 작년부터 한일 독문과 학생들의 교류로 한 차원 더 확대된 것은 기꺼운 일이다.

지난 주 나는 독문학 전공 학생들 4명과 함께 9월16일(토)∼ 21일(목)까지 하기학교 4일을 포함해 6일간의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도쿄에서 버스로 5시간이나 걸리는 나가노 근교 노지리 호숫가에 있는 추오 대학 수련관은 검소한 겉과 달리 안은 양탄자까지 깔려 웬만한 호텔보다 더 깔끔하고 멋지게 수리가 돼 있었다.

독일과 유고 학생 등 4개국 60명의 학생들이 참석하여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여러가지 주제로 토론을 하고 놀이며 연극을 준비하곤 했다.

토론의 주제는 한국, 독일, 일본의 이미지, 혹은 ‘21세기에 가져가고 싶은 것과 두고가고 싶은 것’등이었는데, 학생들은 몇 시간씩 진지하게 토론을 하고 그 결과를 적어 전시하곤 했다.

올해로 11회 째. 이를 이끌어 온 노구찌 교수가 10주년인 작년에 처음으로 우리 대학 독문학 전공 학생들을 초대했고, 교수들은 불과 4명에 불과한 한국 학생들이 왔을 뿐인데 분위기가 그렇게 다를 수 없다며 신기해했던 것이다.

일본학생들은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이지만 한국 대학생들과 만나는 것은 처음이라며 반가와 햇고, 작년엔 40명이던 참가자가 60명으로 늘어난 것도 조금은 이 국제적 만남의 덕인 듯 했다.

놀라운 것은 작년 우리 학생들과의 우정을 맺어 방학 때 우리학교를 방문한 일본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하거나 아예 미래의 계획을 한국과 연관지어 세우는 학생도 있었다.

독일어 사전과 더불어 일한, 한일 사전을 들고 다니기까지 해서 나는 젊은이들에게 이런 짧은 만남이 지니는 의미에 충격을 받았다.

서로의 언어를 배우는 시간도 있어 일본 학생들이 나를 한국말로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독일어로 말을 걸려 애쓰는 것이 귀여운 생각까지 들었다.

그들 중 한일관계에 대해 좀 잘 아는 학생은 작년에 한국 학생들이 온다기에 실은 은근히 겁을 먹었었다는 이야기를 올해에야 털어놓았다.

나는 작년엔 한국의 독문학 현황에 대해 특강을 했는데, 올해엔 한일간의 과거에 대해 이야기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일본 학교에서는 대개 메이지유신까지만 역사를 배우기 때문에 일본의 식민지 지배의 역사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는 것이었다.

대학생들의 세미나에 초대받아 가서 그 나라를 비판한다는 것이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전체적인 식민지사를 소개하기엔 시간도 너무 짧아 나는 우리학교의 역사를 소개하면서 식민지 시대 독립운동을 돕다가 중국에 갔을 때 독살 당한 하란사 선생, 김할란 박사의 일생 등을 소개했다.

학생들은 충격을 받은 듯 했고, 한 독일인 교수는 내게와서 그렇게 당했으면서 김포공항에서 일본 말로 안내 방송을 할 것까지 있느냐고 물어왔다.

한 일본 학생 하나는 “죄송합니다”를 연발하기도 했다.

마지막 날에는 각 나라의 대표들이 ‘정상회담’을 했다.

21세기에 대한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한국, 일본학생들 모두가 자기들을 과거에 매이고 싶지는 않지만 역사를 알아야 된다고 생각하며, 미래의 평화 공존을 다짐하는 것이었다.

헤어질 때 학생들은 눈물을 글썽였고, 두 학생은 끝내 공항까지 전송을 나왔다.

인터넷과 정보화가 마치 세계를 컴퓨터 안에 집어넣어 우리에게 가져다 준 듯이 착각하고 있지만, 사람과 사람의 만남만큼 귀한 것은 없음을 새삼 느낀 몇 일이었다.

내년엔 우리도 일본과 독일 학생들을 초대하여 그와 비슷한 국제세미나를 개최할 계획을 세워보면서. 지난 호 <이대학보>에는 교환학생들이 많이 갈 뿐 오는 학생들이 적다는 기사가 실렸다.

아시아 하면 으레 중국이나 일본을 떠올리는 것이 세계적 추세로서 한국은 상대적으로 인기가 적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많은 노력과 투자를 해야 한다.

물론 내실 있는 학문 수준이 선행되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정부는 정부대로 학교는 학교대로 주는 것이 받는 것도 될 수 있음을 기억하여 장기적인 투자를 계획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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