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납토성 휘손사건은 한국 문화정채그이 현주소를 말해준다.

백제초기 수도인 위례성일 가능성이 높은 풍납토성의 발굴은 한국고고학의 개가라고 말할 수 있다.

필자도 1987년 외구겡 있을 때 잠시 귀국해 풍납토성의 발굴현장을 찾아보고 우리나라의 고대왕국들이 마침내 그 비밀을 서서히 들어내는 것 같아 흥분했던 것을 기억한다.

겉으로 보이는 것이라고는 맨딴에 구멍이 여러 개 뚫려 있고 토기조각이 몇 개 꽂혀 있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구멍들의 크기와 간격으로 집의 기둥의 형태, 높이로 집의 전반적인 형태를 추정할수 있다.

또 세계고대움집의 형태와의 비교로 한국형의 특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고, 가령 일본이 발굴해 온 고대 취락지역 내에서 일반적인 주거형태와 달리 종교, 정치적 중요성을 지닌것으로 확인되는 집의 형태가 유별나게 한국의 것과 일치한다면 한국과 고대일본의 정치, 문화적 관계에 있어 한국의 영향력을 파악하게 해 줄 수 있다.

고대의 옥생산품 공방이나 철물 공방은 취락지역에서 멀지 않다.

이들의 흔적은 풍납토성의 모습보가 더 흙더미같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흙더미 속에 일본과 한국의 고대관계를 밝히는 열쇠가 들어 있다면? 우리는 신라왕관에서 흔히 보이는 태아모양의 옥장식을 안다.

그런데 이 옥장식이 일본 고분시대의 왕릉에서 나오는 삼보 즉 곡옥, 동검, 동경 중 곡옥과 똑같으며, 중국에는 그러한 것이 없다.

이에 한국에서는 당연히 고대 일본문화의 한국예속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보아 왔다.

그러나 수년 전 일본은 이즈모신사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고대 옥산품 제조강장을 발굴했고 한일지역에서 연대가 가장 이른 것이므로 곡옥의 전통은 한국에서 일본으로가 아니라 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간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 발굴하느냐가 이렇게 중요해 진다.

이렇게 보기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이 존재하고 존재하지 않고 여부가 이렇게 치명적이 될 수 있다.

고대역사와 문화의 연구에 있어서 매장 문화의 연구에 있어서 매장문화유적의 발굴과 보존은 이렇게 중요한 것이다.

풍납토성은 힘들게 찾은 고대왕국의 비밀의 열쇠이다.

그러한 소중한 문화유적을 훼손하는 지경에 이르다니. 이번에 훼손을 주도했던 사람들은 주민들이다.

그러나 그러한 주민들의 집단행동의 배후에는 해당 정부기관의 무성의와 늑장행정이 있었다.

당국은 아무런 보상계획을 발표하지 않은 채 재개발보류로 일관하고 거기에다 발굴비용을 주민들에게 부담을 시켜왔고 발굴팀은 나오지 않는 발굴비를 기다리다 철수해버렸으니 , 주민들은 기다리다 지쳐 ‘이놈의 것 밀어버리고 말지’라고 까지 생각하게 된 것이다.

지금 문화행정의 배는 분명 산으로 치닫고 있다.

백억대의 문화엑스포들이 판을 치고, 세계무슨무슨 총회 등 드러나 보이는 실적 챙기기에만 급급하다.

새천년 맞이 광화문행사에 든 돈이나 12대문을 세우는 데 드는 비용을 생각하면 세금을 꼬박꼬박 내는 교직원으로서 눈앞이 아찔하다.

무엇인가 신축을 하든지 새로 큰일을 벌여야 다들 챙길 떡고물도 있고 그래서 잘먹고 잘살지, 아무 것도 없는 토성자리 같은것, 문화유적 보존관리하는 데에 무슨 돈을 쓰고 싶겠는가? 풍납토성 사건에서 가장 근본적인 이슈가 되는 것은 바로 사유재산권이다.

이것은 문화유적보존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다.

물론 민주국가인 이 나라에서 사유 재산원을 함부로 침해할 수는 없다.

풍납토성의 경우에는 정부가 적절하고 종합적인 보상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한편 그러한 사유재산권을 무식의 소치로 아니면 교활하게 이용하여 문화유적을 망치는 일이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당국은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 나라의 사찰건축, 서원건축은 언젠가는 세계건축사에서 인정을 꼭 받아야 할만큼 위대한 업적이다.

명당자리에 있고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요즈음 사찰들이 돈이 많다 보니 경내에 많으 ㄴ공사들을 시행해 결국은 절을 망쳐놓고 있다.

그리고 명찰이나 유명한 서원 근처 100 M가 개발제한구역이지만 그 경계지역에 지역주민이나 돈 있는 사람들이 싸구려 상업시설을 세우면서 경관을 다 버려 놓고 있다.

사찰, 서원 내의 공사는 치외법권적이다.

그래서 요즈음 경내에 세워지는 박물관들도 큰 문제라고 본다.

원래의 건축디자인과는 전혀 맞지도 않고 그 고즈넉한 터의 균형을 파괴해 버린다.

그 위에 난 절길은 시멘트로 포장하고 있다.

최근 한국이 가장 자랑하는 병산서원에서도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 때 돌아온 대답은 ‘문제점은 충분히 알겠지만 법적으로는 하자가 없어 어쩔수 없다’는 것이었다.

정말 답답해진다.

문화재를 잘 지키기 위해 지금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한 가지 일이 있다면 그것은 문화수준이 높은 장래의 여성지도자들과 문화인 아들들을 키워낼 장래의 어머니들을 잘 키오는 것이다.

오늘따라 내가 강의하는 교양수업‘동양미술의 이해’가 더욱 소중한 수업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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