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Wilson College)

고등학교 때, ‘ School Ties’라는 미국의 사립고등학교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한 사람의 컨닝때문에 반 전원이 졸업하지 못할 위기에 처하는 상황을 본 적이 있다.

그 학교에서는 학생 전원이 시험을 보기 전에 Honor Code에 서명을 하는데, 이것은 말그래도 시험과 관련해 학생으로서의 명예를 지키겠다는 서약이다.

미구겡 있는 Wilson college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나는 Honor Principle이라는 교내 규약을 발견했고‘여기도 이런게 있구나’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정기적인 모임에 참석한 어느날, 학생들이 Honor Principle을 주요 안건으로 진지하게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문제의 발단은 어떤 아이가 친구 방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책을 펴놓고 시험문제를 풀고 있는 룸메이트를 목격한 데서 비롯됐다.

문제는 그 시험이 closed book을 조건으로 하는 take­home 이라는 데 있었다.

문제 형식도 그야말로 교재를 찾으면 답이 그대로 나오는 단답식이었고 과목의 교수님께서는 각자 책을 덮고 풀어서 제출하라 하셨던 것이다.

컨니을 목격한 그 학생은 자신을 비롯한 다수 학생들이 책을 덮고 시험을 봐서 제출하겠지만 비양심적인 소수가 있는 상황에서 성적을 평가하는 것은 불공평하다며 closed book을 조건으로 한 take­home 시험은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속으로 ‘당연한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그런 형태의 시험관행이 성립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어이가 없을 정도로 놀라웠다.

내 상식으로는 take­home 형식의 시험은 교재와 자료를 참고할수 있는 open book일때 유효한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무도 당연한 결론이 날 것이라고 생각했던 토론은 다른 학생드르이 반대로 길어지기 시작했다.

이 학생들은 여태까지 일부 교수님들이 행해온 시험형식 자체를 불명예스런 행동을 하는 소수 때문에 없애는 것은 조급한 해결책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이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경우 교수님들이 학생의 명예를 존중하는 Honor Principle의 전통에 금이 갈 것은 물론, 학교 내 신뢰의 기반이 흔들릴 것을 우려했다.

나는 아이들의‘곧이 곧대로’성햐엥 다시 한 번 놀랐고 동시에‘왜 나는 이 학교에 Honor Principle이라는 엄연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내 머리 속에는 한정된 공간과 시간, 그리고 조교들의 감시 속에서도 컨닝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이화의 책상들이 그려졌다.

만약 이화의 어떤 교수님이 순전히 학생으로서의 명예에 호소하는 이런 방식의 시험을 보겠다고 하신다면 과연 모두들 원칙을 지킬것이며 또한 타인이 원칙을 지킬 것이라고 신뢴할 것인가 생각해보았다.

고등학교 때는 성적 경쟁, 대학교때는 학점 경쟁, 이것이 많은 이화인들의 과거와 현재일 것이다.

그러나 경쟁이 치열하다는 현실이 원칙을 지키지 않는 상황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는‘원칙’이라는 것이 존중하고 지켜야 할 무엇이 아니라, 따분한 무엇, 슬쩍 피해서 최대한의 이익을 보는 것이 현명한 것으로 인식되는 장애물 정도록 전락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는 토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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