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4학년 학생에게 대형강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어본 적이 있다.

그러자 그 학생은 자기는 원래 대형강의를 좋아하지 않지만 자기의 전공과는 다른 전공과목에 관심이 있어 들어보려 해도 과목이 어려울 뿐더러 타과 학생으로서의 불이익을 받을 우려도 있고 해서 안전하고 쉬운 교양과목 대형강의를 수강하게 된다고 한다.

토론식 진행이 거의 불가능하고 시간 내내 강사가 OHP로 띄우는 내용을 수동적으로 받아적기가 일쑤인 등 대형강의를 두고 지적되어 온 문제점은 누구나 아는 바이지만 전공에 매몰돼고 싶지 않은 학생들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물론 학생들은 나름대로 그러한 익명적 상황이 자신에게 편리한 점이 있어 대형강의를 선호하는 경우도 없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대형강의는 곧 교양수업의 문제로 귀착된다.

교양수업을 듣고자 하는 학생은 많으나 개설된 과목도 한정돼 있고, 강의실이나 교수진도 한정돼 있어 대형강의화 될 수 밖에 없으니 말이다.

먼저 대형강의란 말은 수량적 개념이다.

수강생이 몰리면 분반을 하여 소형화시키면 되고, 그러면 대형의 문제는 자연히 해결될 것이다.

그러나 대학의 재정상황, 시설부족 등 여러 여건이 아직까지 그것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렇다면 소형의 전공기초수업을 개방해 강사와 시설의 부족과 수강과목의 편중현상을 지향하도록 노력해 보는 것은 어떨까? 타 전공의 기초과목 수업을 들음으로써 다양한 학문을 공부해 보고자 하는 지적욕구도 충족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자기 전공 학생들에게 편향되는 교수들의 풍토가 사라질 것이 선행돼야 한다.

또한 타과 학생들을 위해선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수업의 수위도 조금 조정돼야 할 것이다.

전공기초수업을 개방할 경우 얻을 수 있는 장점은 또 있다.

이는 고동학교 과목과 별 차별성이 없는 일부 과목부터 시작해서 개괄적, 피상적으로 훑을 수밖에 없는 교양과목 대형강의의 부족한 내용성에 대한 대안으로 고려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이는 단순히 대학교육 내에서만 사고될 수 없는 부분이다.

교양교육이 중등교육과정에서 대부분 커버되어야 하는데, 오늘날 우리나라의 입시교육체제가 그것을 해내지 못하기 때문에 교양교육, 심지어 인성교육까지 대학의 몫으로 미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문제점을 짚어보기 위해 독일의 경우를 간단히 살펴볼까 한다.

독일에서 교양교육은 김나지움(고등학교)에서 이미 마친 것으로 간주한다.

즉 대학은 전공교육을 위한 장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각 전공마다 기초과목을 튼튼하게 가르치는 데 역점을 둔다.

또한 김나지움 상급과정에서는 이미 학생이 대학에 진학하여 전공할 분야와 관련하여 선택과목제 수업이 이루어 진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대학에서 대형강의가 없자 않는데, 그것은 대개 저명한 교수의 수업을 듣기 위해 학생들이 몰렸을 경우이다.

그리고 이때 강의의 내용은 교수의 재량에 맡겨져 있고 대개 교수 자신이 연구한 것을 발표하는 형식이며 그에 따라 교재도 없다.

주지하다시피 독일의 대학에서는 강의 형식이 크게 두가지로 대별되는데, 우선 우리나라에서처럼 학점을 취득하는 토론식 강의로서 세미나가 있고 다른 하나는 바로 교수들의 강연식 강의로서 여기서 학생들은 학점취득을 하지 않고 듣기만 하며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다.

그리고 신입생이 듣는 기초과정의 경우 흔히 보충학습 제도가 활용된다.

그것은 수업에서 배웠거나 배울 내용을 세분화시키고 심화시켜 상급생이 수업의 시간, 혹은 분할된 세미나 시간에 하급생을 지도하여 해당 세미나를 준비, 복습하는 시간이다.

이때 강의를 돕는 상급생은 학교에서 지원을 받는다.

이 보충학습제도는 우리 대학에서도 활용해봄직 하다.

대형강의, 교양수업의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답은 결코 쉽게 나올 수 없다.

이는 제반여건의 상황은 물론이요, 보다 쉽고, 보다 학점을 따기 용이한 강의를 선호하는 학생들에 의해 점차 교양수업의 질이 하향구조조정 되고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사회 여러분야에서 전문인을 요구하지 않는 사회풍토로 인해 대학에서의 전공교육 부실화를 유도해 내는 사회적 요인도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대학원 중심체제를 주장한다고 해서 대학교육이 고등학교때 못다한 교양을 배우는 수준으로 전락해서는 안될 것이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