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귀를 가진 선배가 될래요" (전윤정 가정관리학과 2) 나에겐 언제부터인가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그것은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고나서는 서두나 내용보다 먼저 뒤에 있는 「도서대출표」의 목록을 훑어보는 것이다.

적혀있는과, 학년, 이름등을 보면서 얼굴은 몰라도 한 뜻을 픔은 동지애를 느끼며 나름대로 뿌듯해하기까지 했다.

특별히 내가 문과생인 고로 이과계의 학우들이나, 윗학번의 선배들이 많은 경우에는 잘난척도 하며, 위풍당당하게 내이름 석자를 적어넣는 것이다.

입추라는 말이 어색하게도 무척이나 더웠던 늦여름, 완벽한 난방시설을 자랑하는 학교도서관에 들렀다.

별다른 독서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이것저것 들춰보았다.

그러다 평소 읽어야지 하며 미루던 책 한권을 찾아 여느때와 같이 뒤에 있는 대출표를 뽑아보았다.

그런데 이것이 웬일인가? 앞뒤 온통 91학번 투성이 아닌가! 기초적인 사회과학도서인줄 알고 있었지만 나으 알량한 자존심은 몹시 상해 버렸다.

책을 덮고서 그래도 그냥 빌려갈까 망설이다가 나는 모험(?)을 무릎쓰고 바로옆에 꽂혀있던 같은 책을 꺼냈다.

휴. 다행히도 새로 갈아 끼운 대출표엔 윗학번 두어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나의 이름을 쓰면서 자족하여 낄낄대다가 그만 웃음을 멈추었다.

「9066051 인간 전윤정, 왜 이리 유치한가?」 공자께서도 「불치하문」이라 하였는데 하물며 나같은 소생이 겨우 한두학번차이를 이유로 울고 웃었다니 낯이 붉어졌다.

생각해보면 써클이나 교회에서 후배들의 말을 신중하게 듣지않고 흘려버리거나, 나와 다른 의견일 경우엔 더더욱 내생각을 앞세워 묵살해버린 때도 많았다.

이것이 우리가 질타하는 기성세대의 「권위」와 다르지 않은게 아닐까? 그래, 이제 점점 후배들이 생길수록 「열린 귀」를 가지고 그들의 생각과 의견을 경청해야겠다.

지난날의 나의 작은 경험과 얕은 지식으로 고집을 피우지 말아야지. 그럴때 선배들도 우리를 보다 넓은 가슴으로 품어줄꺼야. 그렇다.

서로가 서로를 낮은 위치에서 섬길때, 서로 이해한다는 것이란, 결국 그 사람 아래에 있을때 성립되는 것 아닌가? 그리하여 작은 힘이 되어줄때 , 우리의 공동체는 견고하며, 아름다워질 것이다.

아! 그러나 나는 오늘도 도서관 작은 쪽지앞에서 희비의 쌍곡선을 그리며 나의 못난 이름 석자를 그려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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