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과 여행
방학과 여행
  • 이대학보
  • 승인 1991.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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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부쩍 늘어난 해외 여행은 대학생들의 참여가 두드러지면서 캠퍼스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는 것 같다.

우리들의 학창시절에는 꿈도 못꾸던 일이라 부럽기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마치 유행병처럼 번지는 여행이 바람직스러운 것인가에 대하여 확신이 서질 않는다.

여행이 주는 흥분과 불안, 그리고 실제적인 고통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깨우치게 한다.

아무리 준비를 하여도 미지의 세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돌발적인 사건들은 우리로 하여금 예측의 한계를 알게하며 그 현장에서 우리들이 자신나름대로의 적응을 해나가는 과정은 때로는 자신도 놀랄만큼 새로운 모습으로 자신을 돌아보게한다.

그렇기 때문에 진짜 여행가들은 아무 준비 없이 떠난다는 역설적 주장도 있다.

특히 외국에서 자신의 홀로서기를 실현하는 동기는 현재 우리의 교육제도에서 성장한 대학생들에게 커다란 배움의 기회가 될 수 있으며 우리가 세계를 알고 이해하는데 지름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항상 남에게만 의지하였던 의타심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나가게하는 여행이라면 나는 대학생으로서 해볼만한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마치 여러 종류의 페키지 여행이 그렇듯이 모든 것이 정해진 계획에 의거하여 기계적으로 여러곳을 방문하고 심지어 갔다왔다는 표시를 남기기위하여 사진이나 찍고 오거나 스케줄에 맞추기 위하여 여행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여행은 젊은이들에게 무슨 득이 될까 의심스럽다.

오히려 기왕에 간다면 어느 한 곳을 깊이 있게 탐색하며 스스로 사색하여 그 곳에서도 어떤 인간들이 살았고, 지금도 살고있으며, 자신과 그들은 어떠한 이해가 가능한가를 역사와 문화적 기반위에서 헤아려보는 것이 더 값진 것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수천년의 역사를 가진 로마를 하루나 이틀에 본다는 것은 관광여행은 되어도 젊은이들의 탐구여행은 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의견이다.

결국 젊은이가 떠나야하는 길은 무엇인가를 찾는 긴 여행이어야 한다.

여행은 반드시 나라밖일 필요도 없으며 타인이 지정해주는 어떤 곳일 수 없다.

젊음이 지닌 가능성은 불확정성에 있다.

우리가 젊은이들에게 확실하고 분명한 것만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우리들의 미래를 그러한 것에 가두어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를 닫아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긴여행을 떠나려는 젊은이들은 대개가 열려진 마음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자신은 작은 유혹에 쉽사리 굴복하지 않는 정신의 소유자들이다.

정신의 끝간데를 찾아나서는 젊은이를 만나는 기쁨은 나와 같은 나이에 만날 수 있는 드문 행복 중의 하나이다.

이 길에서는 그들이 여행의 동반자들이다.

이 길은 지름길일 수 없다는 자각과 계속 가야한다는 집념 그리고 욕망이 그늘을 드리우지 않는 정신이 살아있는 곳이다.

나는 때로 산에서 그들을 스치곤한다.

많은 짐을 지고 높은 산에 오르는 젊은이들은 대개는 생각을 하며 걷는다.

말이 없으면서도 저멀리 던지는 그들의 시선은 눈앞의 고통을 전부라 생각지않고 산높이만큼 자신의 사고로 깊게하는 것같고 자연이 그들에게 주는 신선한 충격은 작은 풀의 생명력을 느끼게하는 것같다.

나는 때로 빈 교정에서도 그들을 스친다.

주말이나 방학중에 캠퍼스에서 그들을 마주치는 시간은 대개 실험실이나 도서관이 닫히는 시간이다.

하루 종일 잡념없이 실험을 하다가 또는 책을 읽다가 마지못해 쫓겨나오면서도 그들의 가슴은 뿌듯하고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대개는 천천히 걸으며 하늘을 쳐다보고 별이 나와 있으면 이야기를 하듯이 머뭇거리기도 한다.

좀 이른 때는 노을빛이 어린 얼굴들이다.

때로는 뜻하지 않은 곳에서도 그들을 스친다.

삶의 고통에 짓눌린 사람들 속에서 그들과 고통을 같이 하면서도 인간의 어두운 면만을 탓하지 않고 맑고 밝게 그들을 대하며 자신의 전부를 던져 살고있는 젊은이들이 있다.

그들에겐 대학이 지식의 생산공장이 아니라 행동을 지식과 일치시키려는 곳이며 말보다 자신의 행위로써 길을 찾는 젊은이들이다.

대학에서 우리가 즐길 수 있는 사고의 여행은 다양하다.

각 전공분야마다 다른길이 있고 그 길은 또 나누어져 더 세분되는 깊은 길들이 있다.

그 길들은 마치 산을 오르는 길과 같아 한 봉우리에 오르면 다른 봉우리도 보이고 더높이 오를수록 시야도 넓어지는 것같다.

이렇게 대학에는 많은 길이 있고 그 길로 어디로든 여행을 떠날 수 있는데도 마치 딴길, 타인의 길은 없는 것처럼 여기거나 막다른 길처럼 여기는 젊은이도 있다.

신입생의 경우에는 대학안에 열려있는 다양한 길을 탐색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한국과 같이 입시제도로 인하여 잘못된 길에 들어선 젊은이들은 자신이 택한 인생의 여행길이 어떤것인가를 알아보고 또 딴 길은 없는가를 살펴봐야하는 중요한 시기이다.

우리는 비록 자신의 길을 확신한다 할지라도 타인의 넓은 길 세계의 길 그리고 그 길이 인도하는 정상의 빛을 곁눈질하며 타인을 이해하고 세계를 이해하는 길로 가야한다.

이것이 대학인의 사명이자 우리 각자가 가야할 길에서 동반자로 만날 수 있다면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다.

여행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노력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끈질긴 정신력의 배양이 있어야 여행은 진짜 여행으로 우리의 삶과 직결된다.

대학은 길을 찾는이에게는 동반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이며 아직 찾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길을 찾아보는 연습실험장이라 사회로 나가기 전 방학에 아무런 준비 없이 자연과학도가 인문사회과학에 뛰어들어 걸어볼 수도 있고, 인문사회과학도들이 자연과학이나 예술에 자신을 던져볼 수 있는 유일한 부담없는 기간이다.

지적여행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매력은 킬리만자로의 산정에서 발견된 표범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지칠줄 모르는 탐구라는 병에 우리를 오르게 한다.

어떤 시인이 헤겔을 일컬어『그는 생각의 극지점을 향해 너무 멀리가버렸기때문에 그의 사고는 수정처럼 굳어버렸다』고 했다.

나의 습관적 여행 때문에 여행에 대한 일상적인 생각에서 어느덧 벗어났으나, 대학에서 이런 여행을 떠나는 이들을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에게도 그런 행운이 찾아올까? 그러나 나는 기다리겠다.

송준만 특교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