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대학문제 교육이념에서 기인

학기말에는 학생들이나 교수들이나 모두 착잡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새로운 기대속에 시작한 한 학기를 덧없이 보내버린데 대한 안타까움, 후회와 아울러 시간표에 짜맞춘 쳇바퀴속의 다람쥐 같은 생활에서 벗어난다는 해방감 등이 묘하게 교차되기 때문이다.

이번 학기말에 이런 기분이 더 심하게 느껴지는 것은 학기초부터 시작해서 크고 작은 충격들을 계속 받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예체능계 입시부정 사건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시작된 이번 학기에는 대학이 뉴스의 촛점이 된 적이 유난히도 많았다.

일부 사립대에서는 등록금 인상문제로 학교당국과 학생들간의 대립과 갈등이 심하게 노출되었고, 개인적인 일로 사제지간에 주먹이 오가고 맞고소까지 하게된 사건도 있었다.

그리고 「투쟁」의 4월과 5월에는 대학이 뉴스의 초점이 되어 버렸다.

봄을 통해 자연은 우리에게 생명을 일깨워 주려했지만, 영정들과 만장들이 자리한 캠퍼스에 봄은 길게 머물지 않았고 이렇게 대학인 모두에게 충격과 좌절을 심하게 겪게 한 91년의 1학기는 끝나가고 있는 것이다.

갈등과 혼란의 학기를 마무리하면서 우리는 오늘의 대학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며칠전 석간신문을 보니 대학과 관련된 굵직굵직한 기사들이 4개나 되었다.

대학이 이처럼 중요한 뉴스거리인 나라도 드물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아니고 사람이 개를 물어야 뉴스」라는 표현은 물론 과장된 것이지만 뉴스의 생리를 잘 보여주는 명언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대학이 뉴스가치를 갖고 있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우리사회에서 대학이 상당한 뉴스가치를 갖고 있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대학입학 자체를 인생의 목표로 보고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대학입학에 관한 문제들은 국민적인 관심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은가. 또한 대학이 정부의 제도적 통제로부터 독립되지 못했다는 사실도 대학의 뉴스가치성을 높여주고 있는 것이다.

대학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정부에 대한 언론의 환경감시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은 대학에 관련된 기사들의 대부분이 교육행정, 제도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에 잘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대학과 관련된 최근의 뉴스들중에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은 대학인들의 일탈행위에 관한 것들이다.

통념적으로 일탈집단이 아닌 대학인들의 일탈행위는 뉴스의 생리에 잘 맞기 때문에 더 크게 취급되는 지도 모른다.

대학생들의 커닝문제, 아르바이트와 과소비문제, 폭력문제, 캠퍼스의 무질서, 교수들의 개인적 비리문제들이 간혹 선정주의로 가공되어 보도외었다.

언론을 통해 그러난 오늘 의 대학의 모습은 「상아탑」도 「양심의 보루」도 아닌 우리사회의 모순과 병폐가 압축된 사회의 그 모습 그대로인 것이다.

「어떻게 대학교수가…」, 「어떻게 대학생들이… 」하며 사람들이 대학인들의 도덕성, 윤리의식, 생활태도등을 성토하는 소리를 지난학기 내내 많이들어왔다.

이들의 실망과 분노는 아마 대학에 걸었던 그들의 기대와 희망과 높은 상관관계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지난 몇년간 우리는 우리사회에서 중요한 사회제도들의 권위와 그들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하나, 둘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았다.

정부, 국회, 법원, 경찰, 기업, 언론, 병원, 그리고 이제는 대학까지도 권위와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사회를 수 많은 작은 톱니바퀴들이 맞물려 돌아가는 시계에 비유한다면, 제도들은 각각의 기능을 갖고 있는 톱니바퀴들이다.

지금의 우리사회는 각각의 바퀴들이 제대로 돌지 못해 늦게 가기도 하고 빨리가기도 하는 고장난 시계와 같다고나 할까, 어디를 어떻게 고쳐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대학도 이 고장난 시계의 일부분이니 혼자만 제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볼 수도 있다.

사실상 오늘날의 대학의 문제는 확고한 교육이념이나 철학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 시행착오를 거듭한 지난 수십년간의 교육행정에 기인한다.

그러므로 대학교육을 자율화 시키는 제도적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는한, 대학의 문제가 본질적으로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대학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가 대학교육의 이념이나 철학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쉽게 얘기하자면 각자가 자신이 왜 대학에 왔으며, 무엇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깊이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학생들에게 있어서 대학입학은 그 자체가 못표였기 때문에, 일단 대학에 입학한 뒤에는 마치 모든 것을 다 성취한 것처럼 착각하여 더이상 무엇을 얻으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대학자체가 목적이었으므로 학문에 대한 애정과 학교에 대한 소속감, 자긍심도 약하게 마련이다.

다른 나라 대학생들에 비해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가장 책을 적게 읽는다는 언론보도도 있었지만, 요즈음 대학생들의 수동적인 수학태도와 부족한 학구열에 좌절을 느끼고 있는게 사실이다.

대학가에 만연되고 있는 커닝문제도 본질적으로는 대학생들이 대학교육에 대한 자신의 뚜렷한 철학이 없기 때문이다.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성적으로 잘 받아야겠다는 생각은 나무만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부정한 행휘를 통해 설사 좋은 성적을 얻었다고 해도, 그 가치는 그러한 행휘를 통해 잃어버린 자신에 대한 긍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대학교육에 대한 자신의 철학이 없다는 것은 학생들의 학교에 대한 주인의식이 없다는 것에서도 나타난다.

많은 학생들은 대학교육을 세속적인 성공의 통과의례정도로 생각하고 자신이 학교의 영원한 일부라는 사실, 또한 학교 역시 영원한 지신의 일부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지난 5월31일 대강당에서 있었던 개교 105주년 기념식에서 많은 학생들이 매우 시끄럽게 떠들었는데, 자신들의 잔치를 스스로 망쳐놓은 주인의식 없는 주인들을 보고 매우 실망하였다.

부정행위를 위해 학교의 기물인 책상을 더럽히는 학생들,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모두를 위한 벽이나 길을 독점하고 파괴하는 학생들 모두가 주인의식이 없는 사람들이다.

대학인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과 대학과 사회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풀뿌리 철학운동」이 없는 한, 대학은 권위와 신뢰를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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