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시론 (유임수 경제학과교수) 국민의 뜻 따르는 것이 난국해결의 열쇠 제2차 세계대전의 물질적 피해는 화폐로 환산될 성질의 것이 아닐 만큼 엄청났다.

서유럽국가들의 경우 50~60년대에 전쟁 피해를 복구하는데 전력해야 했을 정도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서유럽의 50~60년대는 경제성장의 황금기였다.

이를 역사의 순환법칙이라 한다면, 인간의 역사는 인간 스스로 에게 너무 냉혹함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50~60년대에 서유럽의 경제개발의 양적 성과는 매우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이기간동안 성장의 열매가 모든 사회구성원들에게 공평하게 그리고 적절하게 귀속되었는가 하는 문제가 사회전반적으로 제기되었고, 결국 서유럽국가들은 자유경쟁의 시장경제제도가 공평한 소득분배체계를 이루는 데는 미력하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서유럽 국가들은 오랜 전총의 정치민주주의를 기반으로 경제민주주의의 꽃을 피울 수 있었다.

선진자본주의국가들이 보다 나은 복지국가의 모형에 도달하기 위한 정책적 전략과 전술은 나라마다 한결같지는 않았다.

프랑스의 경우에는 라레토의 최적 자원배분은 시장가격기구에 맡기되 소득분배의 사회적 성격을 고려하는 사회적 시장경제체제의 확립이 주요한 경제적 과제였다.

그러한 전략과 전술이 화합을 이루어 서유럽은 고도경제 성장을 구가하였다.

하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성공에도 불구하고 학생과 노동자들을 중심으로한 체제변혁의 요구가 60년대 서유럽에서도 높아졌다.

1968년 소르본대학대학생들이 드골정권에 요구한 사회개혁과 이에 가세한 노동자들의 지위향상 요구가 프랑스에서는 5월혁명을 탄생시켰다.

반전·반핵운동이 한창이었던 1969년 서독에서도 체제변혁의 목소리가 드세었다.

프랑스와 서독은 사회비판세력의 요구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자세를 취했다.

특히 서독은 안으로 개혁의 기치를 내걸었고 밖으로 동방정책을 자신감있게 표방하였다.

서독의 개혁정책은 당시에 세제개혁 ,토지개혁, 노사공영제, 그리고 각종 소득분배정책 등으로 나타났고 그 작업은 착실히 진행되었다.

물론 이러한 개혁에 반대하는 기득권층 또는 부수세력의 힘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굳건한 정치민주주의의 기반에 힘입어 서독은 오늘날 복지의 선진국으로 발돋움했으며, 통일과업을 완수하기에 이르렀다.

오늘날 한국이 처해있는 상황은 어떠한 처방을 기다리고 있는가? 경제정책은 임상실험을 통해 그 추진방향이 결정되지 않는다.

시간과 공간을 달리 하는, 다시말하면 역사적 특수성과 지리적 국지성을 가진 한국의 사회적 병리 현상을 치유하기 위해 무비판적으로 선진 복지국가의 처방전을 원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당위론적 처방의 하나는 다음과 같다.

즉 사회병리현상의 원인에 대한 정확한인식이며, 이를 제거하기 위한 지엽적인 부작용은 감수해야 한다는 사회진화에 대한 믿음을 갖는 일이다.

61년 군사정권이 등장한 이후 30여년 이어론 우리의 헌정사는 절대권력의 횡포와 몰락으로 점철된 비극의 역사였다.

현재 정국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권력집단의 경우도 비극적 헌정사에 종지부를 찍을 힘과 결단력을 구비하였다고 보기엔 어렵다.

신록의 푸르름으로 생기가 돌아야 할 대학의 캠퍼스는 연일 최루탄가스로 뒤범벅이 되고, 전국의 주요도시에서는 거리마다 전쟁아닌 전갱이 벌어지고 있다.

이른바 「총체적 난국」이라는 표현은 몇년전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건만 어려운 고비를 넘어섰다는 일말의 안도감은 조금도 내뱉을 수 없는 상황이다.

총체적 난국의 원인은 매우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어찌보면 우리의 오늘날 처지는 60년대말 서유럽이 겪었던 것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70~80년대 추진되었던 대대적인 경제성장정책의 휴유증 정도에 신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좀 더 한가닥을 풀어보면 우리의 병은 단순히 성장정책이 빚은 뒷탈정독가 아니다.

즉 정치민주주의뿌리가 빈약 한데서 오는 사회전반의 영양실조라고 보아야 한다.

최근에 발생된 수서택지분양사건, 낙동강 폐놀오염사건, 윈진 레이온 사건, 강경대군 치사사건 등과 같은 일련의 사건들은 사회병리 현상이 외부로 노출된 상처들이다.

이들 모두가 권위주의적 정치 관행과 이윤극대화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천민자본주의가 낳은 부산물들이다.

총체적 난국을 극복하고 정치·경제·사회의 제반문제들을 해결하는 길은 무엇이겠는가? 그 최선의 선택이자 유일한 길은 정치민주화와 경제개혁조치들을 하루빨리 달성하는 일이다.

북방정책을 포방하면서도 한편으로 공안정치를 일삼는 정치행태는 국민들에게 더 이상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

국가의 대내외적 활동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국민들이 혼선을 빚는다면 응결된 국가의 힘이 발휘될 수 없게 된다.

강군 치사사건으로 일어난 최근의 정국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우선 국민의 마음이 어디에 쏠려 있는지부터 겸허하게 검토해보고, 국민의 뜻을 내정개혁과 정치민주화 작업에 더 한층 반영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될때, 경제적 민주주의 의 꽃도 자연스럽게 향기를 피울 수 있을 것이다.

정부가 집권초에 약속했던 경제정의실현을 위한 갖가지 항목들이 모두 선언적인 수준에서 끝나버린 지금, 각종 금융·토지·세제개혁을 통한 정부의 경제정의실현 의지를 다시 한번 국민들에게 확고히 보여 주어야 할 때다.

즉흥적이고 전시효과만을 노린 경제정책들을 남발함으로써 정부에 대한 신뢰의 폭이 좁아지고 경제운용에 혼란이 가중된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지 않으면 안된다.

또한 모든 개별경제주체들은 보다 분별력 있는 정황파악으로 난국을 수습하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학생·노동자·정부·사용자 모든 계층이 권위주의적 병폐가 더 이상 이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도록 힘써야 한다.

이는 우리 국민 모두가 이미 공감대를 형성한 과업인 줄로 안다.

전방위외교정책의 결과 한국은 동서국가들이 진출하기 위한 공간을 제공하고 있으며, 반대로 한국의 해외진출의 기회와 폭이 더 없이 개방되어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국민모두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개방의 이익보다는 손실이 더크게 되는 현실에 조만간 직면하게 될지도 모른다.

옛부터 「정치는 바르게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흐트러져 있는, 아노미의 시국을 풀기위해서 진정한 정치란 존재하며, 단순한 통치는 필요하지 않다.

정치는 위정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국민들의 뜻을 거력하지 않을 때 그 정치는 비로소 바른 것이되고, 그때 난국해결의 열쇠는 어렵지 않게 발견될 것이다.

위기는 전화위복의 계기이기도하다.

전후의 폐해를 성장의 발판으로 삼았던 서유럽의 경험은 우리가 배워야 할 값진 교훈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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