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강경대군 노제 다녀와서 8겹 바리케이드속 최루탄냄새 얼룩져 「달리던 네무릎이 피에 젖고 달려야 했던 그 이유가 피에 젖고 4월의 어느 하루가 붉게 피로물든」 그날, 어두워지는 과방을 지키다가 전해들은 경대의 소식에 눈물을 왈칵 쏟아버렸던 그날을 기억한다.

그날부터 오늘까지 이땅 구석구석에서 애도와 분노의 소리가 드높았고 5월14일은 열 아흐레나 차디찬 영안실에 안치되어 있던 열사를 따스한 5월의 땅에 묻는 날이었다.

정부는 시청에서의 노제는 허용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고 했으나, 신촌에서의 노제는 허용된다하였고 최소한 아현동까지의 행렬은 무난히 성사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자신들의 폭력성으로 인해 죽어간 젊은 넋을 향해 보내는 수많은 사람들의 추모와 애도의 뜻마저 차단시키지는 않으리라고. 그러나 그것은 낙관이었다.

지나친 낙관…. 신촌로타리에서 우리는 대열을 정비하고 명지대로 향했다.

인도에 서있던 시민들이 우리가 외치는 구호에 박수로 응답했고 대열속으로 뛰어 들었다.

대열에서 뒤떨어져있던 내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겨우 명지대에 도착했을때는 이미 지랄탄 연기가 주변을 메우고 있었다.

열사의 죽음과 뒤이은 학우들의 분신 앞에서 배후조종이니 생명경시풍조니 하는 망언을 서슴지 않았던 정권은 열사의 마지막가는 길에서조차 자신들의 폭압성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4시 30분경에야 명지대 앞길에서 막혀 있던 운구가 만장, 대형태극기, 풍물패를 앞세우고 모래네 길로 이동하자 시민들은 모금을 벌이며 큰 호응을 보였다.

6시경, 신촌 로타리에서 시작된 노제는 지하철 지붕, 건물 옥상까지 올라간 시민들의 환호속에서 끝나고 시청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운구차 바로 뒤에 서부지구가 앞장을 서서 이대전철역까지 왔을때 우리를 기다린 것은 전경들의 7~8겹 바리케이트 였다.

그들은 최루탄·지랄탄 을 무차별적으로 난사하며 시청을 향해 나가려는 대열을 적극저지 했다.

거기에는 고교생들도 참여하여 『경대형을 묻기 전에 고등학생 총단결로 노태우 정권 타도하자!』는 구호를 외치는 등 현시기의 분노는 그들이 말하는 소수 극렬좌익세력뿐만 아니라 , 광범위하게 포출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러나 운구는 결국 연세대로 되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시간이 늦어지면서 사람들은 하나 둘씩 흩어졌고 나 또한 내일있을 시험을 걱정하며 11시쯤 집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아현동 전철역으로 걸어가던 중 시위과정에서 연행된 학우들이 상의를 벗기운 채 끌려가는 모습들을 보았다.

80년을 열어 젖힌 핏빛 5월의 광주가 오늘 이거리에서도 계속되고 있음을 느꼈다.

경대의 죽음은 장례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척박한 땅이 해방되는 그 날까지 우리의 가슴에 남아 있어야 할 것이다.

최남대(법학·3)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