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희야! 얼마전 나에게 보낸 마지막편지를 몇번이고 되새겨 읽으며 다음에 전화할때는 힘찬 목소리를 들려달라는 너의 보이지 않는 격려를 느낀다.

지난 4월26일 서울에서 나는 명지대 강경대학우의 사망 소식을 듣고 아연해 하며 경악의 하루 밤을 지낸뒤 연세대에서 2만이 넘는 시민, 학생들과 함께 규탄집회에 참여했었단다.

이미 만성화된 폭력에 마냥 분노하고만 있었던 나에게 이틀후 같은 장소에서 열린 집회는 너무도 충격적인 너의 분신소식을 전해주었다.

지난 89년 우리는 고3여름을 전교조와 함께 몸부림치며 보내야했고 그런과정에서 나의 이기심을 질타하며 날카로운 비판을 서슴치 않았던 너. 그리고 작년 9월7일 전남대에서 있었던 농민대회에서 다시만난 너는 여전히 네가 속한 공간에서 최선을 다하려 노력하는 정말 믿음직한 동지였다.

가정대만큼 봄을 느끼기에 좋은 곳이 없다며 그렇지만 현실의 봄에 자행되고 있는 학우들의 연행과 구속에 안타까와 하며, 네가 처음으로 만든 교지를 읽어본 소감을 묻기도 하며, 넌 정말 철저히 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사람들은 이제 죽음에 별 충격을 받지 않는것 같더라며 시도한 너의 분신. 내가 아는 친구의 분신이었기 때문에 난 이렇게 충격을 받은 것일까? 최근 무기력하고 안일하게 살아온 나에게 몸을 살라 꾸짖음으로 결사 투쟁의 의지를 밝힘에 과연 누가 너의 분신을 왜곡하며 비난할 수 있겠니? 승희야! 나 절망하지 않을께. 우리에겐 눈물을 흘릴 여유가 없다고 그랬지? 너의 용기가 우리 이화인에게 새로운 의지를 심어 주었으리라 나는 믿는다.

아니 꼭 그래야만 할거다.

이제 우리는 꽃병에 꽂인 꽃이기 보다는 땅속에 튼튼하게 뿌리내리는 나무가 돼야하니까. 『한번 이 싸움의 길에 나선 우리 / 오늘 돌아서는 네가 돌아오는 날까지 / 네 자리를 여기 둔 채 / 기다린다.

/ 너 돌아오는 날까지.』 통일염원 47년 5월 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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