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기도 한 것이, 달기도 한 것이 입에 쩍쩍 달라붙는 것이, 참 기가 막히는구나」 어릴적에는 정말 그보다 환상적인 맛은 없었다.

비가 내릴듯한 흑백텔레비전을 통해 간혹 세련되게 먹고 있는 배우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건반사작용을 경험하곤 했었으니까. 그리고는 그것을 실컷 먹어 보는 것이 어릴적 그 너절한 소원중의 하나이기도 했었으니까 말이다.

아마 앉은듯 서 있는듯 키가 작은 큰형부에게 제법 후한 점수를 준 이유도 지금 생각건데 맞선본 이후에 처음 집에 인사오면서 꿈에 그리던(?) 그 환상적인 과일을 한 웅큼 들고 왔다는 사실이 어린마음에 혹했기 때문임을 부인하기가 어려울듯하다.

형부가 다녀가신 다음날 틴구들에게 기막힌 맛을 어떻게 잘 자랑할수 있을지가 당시 나와 동생들의 심각한 고민이기도 했었으니까. 그러나 역사(?)는 변했다.

바야흐로 바나나전성시대에 돌입한 것이다.

그 보기만 하여도 배가 불러오듯 흐뭇하던 내 어린시절 바나나에 대한 작은 동경으로부터 이제, 거리 곳곳 지천에 널려 노점상 리어커를 주름잡는 것이 바로 길쭉한 바나낭, 피부 미용에 좋다며 퇴근길에 꼭 언니의 손에들리곤 했던 입질거리도 귤사과로부터 아주 자연스럽게 바나나로 바뀌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가세하여 일곱살날 조카까지도 흔들리는 치아를 뽑아야 하는 치과의 무시무시한 마취주사 앞에서 바나나를 계약조건으로 내세우면 그 공포를 인내하기에 이른 것이다.

어느날 저녁땐가, 농부의 딸이면서도 어쩜 바나나 비닐을 들고 서슴지않고 들어올수 있느냐는 나의 말에 언닌 너무 숩게 대답을 해 버렸다.

『이만큼의 돈에 이정도의 양을 사올 과일이 요즘 우리 주위에 얼마나 있는지나 아니? 게다가 쑥쑥 함부로 벗겨 먹기도 편리하고 깔끔하잖니?』 가격 경쟁에서 벌써부터 적지않는 타격을 입고 있는 우리 농산물. 그래, 쑥쑥 벗겨 한입에 감쪽같이 신속하게 먹어 치울수 있는 바나나의 매력은 혹여 약물 찌꺼기가 배엇을까 씻고 또 씻어서 깎아 접시에 조각조각 썰어먹는 사과나 배보다는 훨씬 현대인의 생리에 맞는지도 모른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면서도 잠깐동안의 실례로 해치울수 있기도 하니까. 이러한 요즘의 세태속에서 비단 내가 농부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 과일을 도외시하는 사람들을 원망할 자격은 없다.

또한 다른 사람의 먹을 권리에 제재를 가할 권리가 내게는 더더욱 없는 것이다.

정녕 농부의 딸인 내 언니조타도 바나나 돌풍에 단단히 한몫을 하고 있으니까. 그래, 주머니 사정에 맞음ㄴ, 입맛에 맞으면 먹어야겠지. 비록 그것이 수입에 의존해 들여온 외국 농산물일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정말 그렇긴 하지만 한가지 농부의 딸이 아닌 그누구라도 한번쯤은 생각해 봐야할 염려됨이 있다.

입에 쩍쩍 달라붙는 바나나에 혹여 우리의 구수하고 텁텁한 된장맛을 촌스럽고 메스껍게 여길날이 멀지 않아 오는것은 아닌지, 새콤달콤한 살구 자두의 독특함이 달작지근한 바나나맛에 흘러 녹아 영영 잊혀진 맛이 도지나 않을지, 그리하여 우리의 식생활에서 「굴러 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걷어 찬다」는 옛 속담의 묘미(?)를 느껴야 할날이 가깝지나 않을지 말이다.

외국 수입 농산물이 화려한 데뷔를 하고 있는 지금 이런 저런 염려된느 마음이 앞서는 나는 「입자 조선인이 짠 것을 ,먹자 조선인이 만든 것을」이라는 외침이 1920년대 우리 산천을 울렸던 때가 있었다는 사실과 또한 햇빛에 그을린 탄 얼굴에 검은 머리가 우리의 농부이지 크고 노란 머리의 핸섬한 아저씨가 우리의 농부는 아니다는 사실을 기억해 달라고 당부하고 싶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