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주의·이기주의속 자기성찰 필요할때

도대체 이럴 수가 있는가? 학생들이 교수를 납치해 머리를 깎고 온갖 폭언과 폭행을 자행하는 일이 터졌을 때 이놈의 세상 로 데까지 왔구나했더니, 이제는 교정에서 자동차 법규를 무시하고 일방통행의 길로 차를 몰고 들어서던 학생이 맞은 편의 자동차를 몰던 교수와 시비가 붙어 그를 두들겨 패줬단가. 역시 이 세상 갈 데까지 갔다는 탄식과 절망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메아리친다.

허기야 사건의 전말을 자세히 알고 보면 제각기 이유가 있고 또 그런대로의 사정들이 있었겠지만, 사건의 발단 원인이야 어떻게 됐던간에 학생들이 모교의 선배이자 교수인 연장자를 폭행 할수 있었다는 사실은 이 사회가 잘돗돼도 뭔가 크게 잘못됐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한마디로 질서도 윤리도 없는 총체적 무규범성의 병을 앓고 있고, 이런 상황에서 제각기 인간다운 행동의 기준을 상실한 우리 국민들은 날로 지독한 이기주의의 늪에 깊이 빠져들어 가고있다.

그러면서도 모두가 자기는 잘못한게 없고 남의 탓으로 돌리기에 정신이 없다.

성균관대의 교수 폭행 사건을 둘러싼 사후처리의 문제만해도 그렇다.

교무회의에서 교수를 때린 학생의 처벌 문제를 놓고 「5시간의 격론」끝에 관련 학생을 무기 저학 시키기로 했다는데 이에 대한 각 이기 집단들의 반응 또한 극에서 극이다.

한 쪽에선 무기정학이 너무나 미온적인 처벌이라고 주장하고있고 또한쪽에선 그것이 너무나 가혹하고 또 부당하다고 아우성이다.

물론 처벌의 부당성을 주장하는 학생들은 또 떼를 지어 학생 처장실을 점거, 철야농성을 벌이면서 평소에 쌓아 온 실력을 신속하게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같은 학생들의 실력 행사가 윤리적·법적 정당성을 의심받던 시대는 이미 옛날이다.

이같은 극과 극의 대결 속에서 학교당국(교무회의)또한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교수폭행 사건의 심각성으로 볼 때 제적이 마땅하지만 학생에게 학교에 돌아 올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신중론이 우세해 무기 정학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이같은 결정 역시 우리 사회의 전통적인 규범과는 거리가 먼 성질의 것이다.

연장자에게 양보한다는 윤리는 고사하고라도 스승을 부모처럼 모셔야 한다는 전통 윤리가 이미 존재하고 있지 않는 현실을 우리는 또 한번 목격해야 하고 쓰라림을 겪어야했던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유교적 전통 윤리의 마지막 보루일 것 같은 성균관 대학교에서 전통 윤리에 대한 사형 선고가 이제 막 내려진 셈이다.

우리 사회가 산업 사회로의 탈바꿈을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박제형태로 나마 존속해 오던 군사부일체의 전통적 사회 관계는 이제 이름도없는 공동묘지에 매장돼 버렸다.

그러기에 대학총장의 얼굴을 학생들이 짓밟고 다녀고 그만이다.

총장 사진을 짓밟고 다니는 학생들은 아예 제처 놓는다 하더라도 그것을 떠내려는 교수들이 있다는 보도에도 우린 접하지 못했다.

무분별한 집단주의의 폭력이 난무하는 교정의 모퉁이에 있는 연구실에서 그들은 진리탐구에 정신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일방적인 시각에서 비아냥거리고만 있을 때도 아닌것 같다.

교수들의 지지와 존경을 받을만한 인물이 못되는 사람이 총장자리에 앉아 있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필경 매사에는 그 이면에 숨은 사연과 이치가 있기 마련이어서 따지고보면 그것이 논리정연한 인과관계의 한 현상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잇기 때문이다.

결국 인과관계론적인 입장에서보면 요즘의 젊은 세대의 무례함과 난폭함의 책임은 우리들 기성세대에 있고 그중에서도 교육자들의 책임이 가장 크다.

누가 그들을 이렇게 길렀고 교육시켜왔는가? 이제 우리사회의 갖가지 문제점들에 대해 남의 탓으로 돌리는 책임전가의 게임은 그만 둘 때에 이른것 같다.

우리사회의 무규범성을 모두 남의 탓으로 돌리고 제각기 발뺌만하기에는 우리사회의 혼란과 불안정성이 너무나 심각하기 때문이다.

교수라고해서 학생의 뺨을 먼저 칠수 있느냐, 학생이 교수를 구타할수 있느냐, 아무리 학생이 잘못했다 하더라도 고소까지 할 수 있느냐, 그리고 교권이 땅에 떨어져 버리고 학생들에게 스승으로서의 예우와 존경을 받을수 없는 상황에서 교수가 사표를 내는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냐 등등의 얘기는 이제 그만 치우자. 그보다는 우리 모두가 죄인이요, 공범자라는 자각의 눈을 떠야 할때인 것 같기 때문이다.

예체능계 대입 부정사건이 터졌을대 우리들은 제자들에게 뭐라고 변명할 수 있었는가? 어디 그것이 예체능계의 문제만이었던가? 학생들 앞에서는 쩔쩔거리면서 돌아서서 교수회의 할때에는 학생들로부터의 교권 수호를 외치는 공허한 일들을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반복해 왔는가? 교권을 바깥세력에게 다 빼앗기고 나서 학생들에게 교권을 돌려달라고 외치는 자가당착의 우를 범해 오던 자들이 바로 우리 교수들 아니었던가? 온통 이 나라가 물질만능주의·집단적 이기주의에 병들어 갈 때 우리들은 그동안 무엇을 해왔는지 이제 자기성찰을 위한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할 때이다.

돈과 권력이 온갖 횡포를 자행하는 이 사회에서 그동안 우리들은 너무나 무기력했고 또 동조적이었다.

그리고 깡그리 무너져버린 전통적 윤리 체계를 대체할 새로운 가치와 규범의 정립에 이제까지 우리는 너무나 등한했었다.

바로 이 무력증과 무관심때문에 우리들은 젊은 세대들의 반항과 도전에 그동안 어른스럽게 대처하지 못했었다.

우리 스스로 어른이기를 포기해버렸던 것이다.

교정에서 사람을 구타하고 폭해오지로 구속된자를 학생이라는 이유로 다시 교정에 돌아오게 하는 것은 국적없는 규범 의식의 소치이다.

얼핏보면 그같은 「신중론」이 교육적·인도주의적 차원의 발상인 것 같지만 행여나 집단적 이기주의의 횡포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온 것일까 두렵다.

차리리 그같은 신중론이 「내탓이오」라는 교육자로서의 자책감에서 나온 것이라는 양심선언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대학 책임자들의 결의에 찬 사직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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