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조들이 만든 격언에 삼사백인이라는 말이 있다.

매사에 임했을때 깊게, 신중히 생각하고 참아야할 일이 있다면 잘 참을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다분히 전근대적인 느낌을 가진 이 어휘를 놓고 오늘 우리는 이것을 새로운 현대적인 시각에서 재 음미해 보고자 하는것이다.

그것은 이 격언이 현대 문명사회를 좀먹는 오늘날의 온갖 병폐와 비리를 치유하는 원초적인 진리임을 깨닫게하고 따라서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가 다시 한번 사이개야할 금언이라고 생각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모든 악이라고 하는것은 이 생각않고 참지 못하는데서 비롯되고 있다.

공중전화의 시비에서 빚어진 폭행, 입시에 낙방하고 성적이 떨어졌다고 투신 자살하고 교통신호를 무시하고 급하게 달리다가 행인을 치어죽게하는것은 모두 이 생각않고 참지 않은데서 비롯되어지는 것이다.

생각을 많이 갖게하는 독서의 경향도 그러하다.

읽는 일을 참지않고 독서대신 영화감상으로 대신한다.

물론 이것은 여화의 특유한 가치를 부정하는 말이 아니다.

요즈음에는 이 급하고 참지않는 세대에 잘 팔려질 수 있는 순수 문학작품, 역사물과 같은것이 만화로 꾸며져 시중의 서점에 나돌고있다.

이 생각않고 참지못하고 급히 서두는 성품의 고착은 우리 나이가 많은 기성세대도 예외가 아니다.

아마도 오늘 젊은 세대가 갖고있는 이 생각않고 참지않는 고질은 우리 기성세대로부터 물려받은 하나의 업보와 같은것일런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이것은 분명 우리 기성세대가 젊은이에게 물려준 그릇된 유산이고 아마도 그 근원은 파란많은 우리 근세사의 역정에서 찾아 볼 수 있을것 같다.

원래 우리 선조들은 슬기롭고 현명했다.

그리고 생각을 많이하고 참을성이 있는 민족임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알고있다.

그런데 근세에 들어와서 그 품성이 변질되었다.

조선조 말엽 열강의 세력과 일제의 침략밑에서 참으로 우리는 수없는 쫓김을 당해왔다.

게다가 6·25사변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참으로 숨가쁜 격동기를 겪었다.

이 쉴새도 없이 숨가쁜격동기를 겪는 과정에서 우리의 슬기로왔던 품성이 변질된것이 아닌가하고 진단을 해 보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이 악순환의 고비를 넘기기 위해서 생각할겨를도, 참을겨를도 없이 매사를 급하게 서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것이 몸속에 배어 필경은 아주 체질화가 되어버린것 인지도 모르겠다.

그 결과 오늘날 정치, 경제, 문화의 모든 면에서 이 졸속주의의 병폐가 표면화 되고 있는것을 오늘 우리는 보고있다.

내일을 내다보지 않고 당장 오늘을 살려고 하는것이 바로 그것이다.

현대화의 상징이라고 할수 있는 고속도로가 항상 보수와 확장공사로 혼란을 빚고 있는것은 그 예의 하나이다.

나는 예술작품을 만드는 작가의 입장에서도 이것을 많이 느끼고 있다.

생각이 담겨지고 철학이 있는 작품은 그렇게 쉽게 빠르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물론 예술작품이 생각에 앞서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예술창작의 형식의 하나일 뿐이지 결코 생각을 안한다는 뜻과는 다르다.

우리가 생활하는 과정에서 어느일에 직면했을때, 용단을내릴때, 우리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빨리 실천으로 옮겨야할때가 있다.

그런 촉박한 상황에서는 신속하게 행동으로 대처해야함은 설명해야할 필요도없다.

그러나 이와같은 경우도 다만 행동자체가 신속한것일뿐 그 이면에는 축적되어진 이성이라든지 사려깊은 지혜가 깔려져있어야하는것이며 그것이 여과되어 행동으로 나타나는것일 뿐이다.

학생들이 어느 문제를 놓고 질문을 할때, 그 답에서 맞고 틀리는지의 여부만을 찾으려 하는것도 삼사백인이 결핍된 좋은 본보기이다.

바꾸어 말해서 사물에 대한 귀납법적인 결론만을 중시하고 그 이치나 논리를 탐구하려고 하는 연역적인 해석이나 생각을 안하려고 하는 경향이 온후하다.

O X의 양극에 있는 흑백논리만으로 모든것을 판단하고 해결하려고 하는 안이한 사고방식의 만연이 해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것을 느낀다.

우리 기성세대가 물려준 이 생각않고 급하게 서두는 그릇된 유산을 오늘의 젊은 세대는 내일의 기성세대가 되기전에 과감하게 마무리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다음세대에 또 다시 물려주는 악순환의 되풀이가 일어나지 말아야 되겠다.

그 대신 오늘의 우리 기성세대는 그것을 모두 우리의 탓, 기성세대의 탓이라고 하는 캐치프레이즈를 더 높이 치켜들고 깊게 반성해야 할 것이다.

옛 선조들이 남긴 이 삼사백인이라고 하는 단순한 수사학적인 어휘를 놓고, 우리는 새롭게 현대적인 시가에서 재조명하고 상기시켜서 그것이 미래의 밝은 문명사회를 건설해 나가는 진정한 유산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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