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 구속 - 언제 「노동의 새벽」을 맞을 수 있을까?
박노해 구속 - 언제 「노동의 새벽」을 맞을 수 있을까?
  • 이대학보
  • 승인 1991.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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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 구속 - 언제 「노동의 새벽」을 맞을 수 있을까? 조악한 문학형식 속에서 비참한 현실에 대한 감상주의적 반발로 창작되던 노동자들의 시문학은 1984년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을 통해 충격적인 전기를 맞게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물론 박노해 노동자시인의 등장은 노동자들의 과학적인 세계관에는 다소 못미쳐 있고 87년 이후의 「혁명적 노동자 문학」을 매개하는 과도적 시기로서의 한계가 일면 노정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분노와 절망을, 내가 미쳐 알지 못했던 노동자들의 슬픔과 원한의 고된 현실까지를 투쟁으로 맞서던 그 아름다운 노동자의 「노동의 새벽」은 내게 눈물머금은 채 바라보는 고은 해오름이 아닐 수 없었다.

생활의 한복판에서 가장 실천적으로 갈등하는 사람만이 확보할 수 있는 감수성과 상상력을 가진 박노해는 사실, 우리 투쟁의 역사적 산물이다.

노동자들의 문예는 자본과 정권에 대한 투쟁속에서 형성된 것이고 노동자의 역사적 사명이 필요로하는 문학이 「노동의 새벽」으로 현시 되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든 얼굴은 없지만 뜨거운 힘이었던 박노해씨가 얼마전 신문지상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수갑에 묶이고 얼굴에는 저항 도중 생긴 상처가 난채로 그가 뒤집어쓴 혐의의 타당성 여부를 논하기 이전에, 내가 사랑하는 한 시인의 구속을 안타까와 하기 전에 나는 먼저 「그가 잡히던 상황이 말하고 있는 것」에 가슴이 아파 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박노해요! 』라고 안타깝게 소리치며 유리창까지 깨는 몸부림의 와중에도, 또는 그를 끌고 어딘가로 향해 버리는 괴차량의 뒷모습에 돌이라도 던지며 말리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단지 보고만 있던 그 사람들 뿐 아니라 아직 많은 사람들은 「노동의 새벽」을 향해 있지 않았고, 노동해방의 깃발이 가슴에서 휘날리지도 않았다.

수서특혜의 국면속에서도 대로에서 사람을 잡아갈수 있는 정권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전사회의 암흑화. 상처 입은 얼굴로 끝내는 끌려가고 만 그사람이 박노해 뿐만은 아닐 것이다.

아직 사천만의 가슴에 미쳐 다 타오르지 못한 해방의 횃불은 언제 어떻게 햇새벽의 여명을 받을 수 있을까. 우리는 무엇으로 그 새벽을 맞을 수 있는지 생각해 본다.

김소정(국문·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