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노예무역
20세기의 노예무역
  • 이대학보
  • 승인 1991.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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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록탑 20세기의 노예무역 이른 새벽 5시. 아직도 어둑어둑하기만한 하늘아래 동이 트기가 무섭게 공구 가방하나 둘러 메고 모여드는 사람들. 「오늘은 일자리가 있으려나」눈비가 차갑게 내리던 그날도 성남시 복정동 일용노동조합 사무실 앞엔 소위 「노가다」라 불리우는 - 사실은 이땅의 당당한 건설직 노동자인 - 아저씨들의 생기로 북적스러웠다.

몇달 전, 별안간 일간지마다 다음과 같은 기사가 일제히 실렸다.

「건설회사마다 일손 구하기 별따기/숙련공은 일당 15만원 웃돌아…」 그러더니 얼마후 정부에선 「병역대상자중 병역면제나 보충역으로 편입되는 인력을 건설산업체에 일정기간 의무복무시키겠다」는 발표와 「해외로부터의 건설인력수입」이라는 건설직노동자에게 치명적인 선고를 내렸다.

우리나라 노동자 착취하기조차 이제는 성가신 모양인지, 바다건너 값싸고 군소리 없는 임금노예 모셔놓고 이윤을 챙기겠다는 속셈이다.

과연 「해외인력수입」이란 것이 정부와 자본가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높은 임금(?)을 요구한다는 건설직 노동자에게는 조금 피해가 갈 지 모르나 우리 국가 경제에는 도움이 되는 일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생산요소」의 수입은 「생산물」의 수입과도 성격이 다른 훨씬 복잡하고 심각한 문제이다.

그것은 「노동력」이란 상품을 담고 있는「사람」의 문제가 함께 결합되기 때문이다.

자본가는 「노동력」이란 상품만을 뽑아내 값싸게 구입하여 이득을 보려 하겠지만, 그 노동력을 위해서는 그 사람들이 살 집과 먹고 입는 문제까지 이 사회가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그들도 아프면 의사에게 진료를 받아야하고 아기를 낳으면 동등하게 교육받을 기회가 베풀어져야 한다.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4천만도 대다수 내집도 없이 먹고 살기조차 힘든 판국인데, 실업문제는 뒤로 하고 소수자본가의 이득을 위해 외국인까지 우리사회가 먹여살려야 할 것인가. 정권과 자본가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우리나라 국민조차 버릴 준비가 되어있는 모양이다.

일용노동조합 사무실에는 제도언론이 거짓 보도에 대한 비판과 함께 해외인력 수입을 결사반대하는 내용의 대자보가 붙어 있었다.

자신의 손으로 수없이 집을 짓는 이들이 내집 하나 없는 터에 「고임금」이란 누명으로 「해외인력수입」이 어찌 정당화될 수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