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댁의 심장병
상주댁의 심장병
  • 이대학보
  • 승인 1991.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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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떡 『엄마, 또 어디가?』 『입 닥치고 가게나 잘봐. 밥상 방안에 차려놨응께 알어서 먹고 아이스케키 자꼬 끄내먹지 좀 말고, 토큰 팔때는 거시림돈 잘 챙겨 받고, 말 안들으면 있다 아주 혼쭐을 빼놀 것잉께로 알었어?』 학교에서 막 돌아온 덕수에게 한바탕 정신없이 쏟아붓고 나서, 상주댁은 주섬주섬 신발을 챙겨 신었다.

다시 한번 꼼꼼히 봉투들을 세어본다음 가게문을 나섰다.

어제는 미숙이네 골목까지 돌았으나 오늘은두번째 계단 끝의 영덕이네부터다.

그 억센 아낙들에게 봉투를 내밀며 아쉬는 소리를 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오금이 저릴 지경이었다.

「돈이 웬수여…」 영 편치못한 속을 추스리며 상주댁은 시멘트블록이 성벽처럼 둘러쳐진 골목길을 힘겹게 오르기 시작했다.

사실, 길건너 기생집 풍미관의 김사장이 느닷없이 찾아들었을 때만 해도 상주댁은 지자제는 커녕 그 비슷한 무엇에도 관심이 없었다.

이런 상주댁에게 김사장은 다짜고짜 자신의 선거운동원이 돼달라는 거였다.

『이게 다 민주적인 지역 발전을 위해서가 아뇨, 상주댁, 아 아니 여사님이 힘만 좀 써주면 이 달동네쪽은 걱정없을테니까』 이것은, 큰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유흥가와 빈민촌이 마주붙어 있는 묘한 이구역의 특수성에 비춰볼때 매우 적절한 득표수가 아닐 수 없었다.

상주댁이 우물쭈물 대답을 못하자 김사장은 슬그머니 안주머니를 더음어 누런봉투 한장을 내밀었다.

『이거, 딱 한장이요. 보아하니 영 살기도 그런 모양인데…. 일만 잘되면야 이건 아무것도 아니지, 암. 나랑 이 아래편 사는 깡패로 장득수가 나오는데, 아 그놈이야 워낙에 극회의원 구린뒷구녕이나 닦아주던 인간말종 아뇨. 다 이지역을 위해 하는 일이니, 우리 함께 잘 해봅시다.

』 놀랍게도 봉투 속에는 백만원짜리 자기앞수표 한장이 얌전히 들어앉아 있었다.

너무 놀라 얼떨떨해진 상주댁의 떨리는 손을 덥썩 잡고 호기있게 흔들기까지 하더니, 김사장은 허허하는 웃음소리만 남기고 가게를 빠져나가 버렸다.

「그 놈의 백만원. 허긴 그것만 있으면 가게 월세값도 보란듯이 올려주고 덕수 새 체육복도 사주고 할 수 있으니깐 두루…」 늦겨울의 찬 바람이 가파른 층계를 오르느라 땀으로 촉촉히젖은 등을 차갑게 훑고 지나갔다.

영덕이네는 아무도 없었다.

내김 터져나오는 안도의 한숨을 누가 엿들을새라 입술을 지긋이 깨물어 도로 밀어넜다.

심장고동이 크게 울린다.

그뒤 몇집에도 맞벌이로 어렵게 사는 동네인지라 어른은 거의 없었다.

한집 한집 한집 도는 동안 웬일이지 가슴이 마치 고장난 펌프처럼 이리저리 쿵쿵거리는 증상은 점점 더 심해져갔다.

이상한 일이다 이런적은 이적지 한번도 없었는데…. 간신히 집들이를 끝내고 이미 어둑해진 골목길을 걸어 상주댁은 새 스티카도 받을겸 선거사무실로 향했다.

좀 걸으면 낫겠지 했던 숨가쁨은 더욱더 심해져갔다.

「아닌게 아니라 돈이 좋긴 좋은기라. 국민핵교 간신히 나온 실력이 금시 대학원 졸로 바뀌드니 소시적에 객기 부리단 단 별들도 가을날 낙엽지듯 후두둑 털어버리구, 저 게다가 그 뭐냐 공약이니 뭐 그런 것들은 정치광고 사인가에서 다 해주잖아. 참 내 연설실력도 학원만 다니면 금방 는다두만, 참나」 길 건너편 시장 한 귀퉁이 옛날 분식집자리에 있는 선거 사무실에는 아직도 꽤 많은 사람이 남아있었다.

그런데 영분위기가 이상하다.

어제만 해도 김반장, 허통장하며 서로들 너스레를 떨던 사내들이 아무 말없이 담배머리에 이빨자국들만 내고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기었는지라요? 와 그라요』상주댁의 물음에 침이라도 뱉을듯 오락실 최씨가 대답했다.

『우리 김사장님이 후보사퇴를 했다구요. 그 장득순가 하는놈이 어느새 민○당에 붙어서 다원이 됐다나. 여기 저기서 전화 한두통이 걸려오드니 그만 딱 사장님 혼자가서 후보등록을 취소해 버렸대요. 어휴, 내팔자야. 그것도 의리라구 시장통 친구 편좀 들어줄래다가 앞으로 오락실만 문닫게생겼네, 으휴 복장이야』 『그러니까는 이제 부텀은 선거운동 안해도 된다 이말이지. 그럼 돈 백만원은? 어, 어쩐다…?』 상주댁은 갑작스런 통증에 가슴을 지긋이 눌렀다.

심장은 이제 아예 살아있는 생물처럼 상주댁의 가슴을 마구 헤집고 튀어 나오려는듯 크게 쿵쾅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