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을 앞두고 후배들에게

무언가 마친다는 일에 사람들은 굉장한 의미를 부여한다.

성대한 축하, 차분한 정리 그리고 새로운 출발. 이러한 의식에 의례히 수반하는 것이 그간의 나날들을 연속필름 돌리듯 떠올리며 되돌아보고 재음미하는 일이다.

본관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 몰라 입학식 첫날부터 영어수업에 본의아니게 지각했던 신입생 시절도 나에겐 있었다.

『저쪽으로 가세요』라고 제법 이화땅을 오래전부터 디딘 티가 나는 선배언니의 세련됨 때문에 무척이나 자신이 왜소하고 초라하게 느껴지던 때. 그러나 대학문턱을 넘는 것이 지상최대의 목표인양, 창백하리만치 책과 씨름하던 끔찍한 고등학생으로부터 벗어난 것만으로도 무한한 자유와 설레임을 가졌던 때이기도 했다.

허나 대학이 막연한 자유와 낭만의 대명사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기 시작하며 어설픈 신입생의 고민은 시작되었던 것 같다.

87년 6월 민주화항쟁. 운동권, 비운동권의 구분없이 이화광장을 가득 메웠던 함성소리. 시청앞을 뒤흔들었던 시민들의 항변과 그들을 숨막히게 했던 최루탄. 이 모든 것이 이전까지 봉쇄되었던 나의 인식의 영역에 충격적인 파문을 던진 것이다ㅏ. 충격으로부터 시작된 나의 고민은 대학 2학년때 사진과 인연을 맺은 후 이곳저곳을 다니며 렌즈에 투영시킨 현실로 더욱 심화되었던 것이다.

보려 애써 노력하지 않았다면 볼 수 없었던 민중들의 삶과 고충은 모순된 사회라도 구조속에서 엄연한 사실로 존재하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게 된 것이다.

허둥대며 보낸 1학년, 무계획하긴 했지만 「사진」에 대한 초보적 관심으로 신났던 2학년, 사회진출이라는 문제를 놓고 본격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만 같은 부담을 느꼈던 3학년, 87년 6월의 충격을 상기하며 무엇으로 살아 남아야 하는가를 고민했던 4학년. 이 4년을 일관된 축으로 꿰뚫는 고민이 바로 내가 평생을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에 해답을 찾는 것이었다.

졸업을 앞둔 4학년들이 공통되게 갖고 있는 고민이 진정 자신이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대학이 가치 함축적인 일보다는 기능주의적 일에 집착하게 만드는 현재의 교육현실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대학생활을 통해 가치를 배우고자 하기보다는 업적주의적 사고에서 비롯된 공부에 시달리는 것이 그러한 결과를 낳는 것이다.

어떤 일을 하건 자신이 평생 무게를 실어 이루어내고자 하는 「가치」의 창출이 대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렇다고 물론 대학에서 요구되는 학문탐구, 전문적 능력 배양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것이 보다 선차적으로 중요한가의 문제지. 대학에서 반드시 얻어야할 「배움」은 출세(?)라는 사회적 척도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큰 뜻을 품고 할 수 있는 「숙원사업」을 찾는 것이고 또 한가지는 자신만의 입신양명을 위한 것이 아닌 양심을 배우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 기존에 자신이 가져왔던 존재기반에서 일탈(?)해 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탈선의 길을 걸으라는 것이 아니라 주객이 전도된 교육에 익숙해 있었던 과거와 일탈 아닌 일탈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마지막 겨울방학을 보내면서 여전히 카메라를 메고 동분서주해 보았다.

역시 내가 보아야 할, 배워야 할 것이 무한히 많이 남겨져 있음을 절실히 깨달으면서 나의 삶의 방향에 무게를 느끼고 이제 시작이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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