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대학보에 바란다식의 기획을 무슨 기념일 같은 때에 어김없이 울궈먹는 주제이긴 하지만 알찬 내용을 갖긴 힘든 것 같다.

「바란다」는 말은 결국 이런 점은 좋지만 잘못된 것도 있으니 앞으로는 잘하라는 격려반 충고반의 의미일텐데 아주 오랜동안 그 대상을 애정어린 눈으로 지켜보지 않고는 설득력을 갖기 힘들기 때문이다.

더우기 학보처럼 시대조류와 대학생 나름의 고민을 민감하게 반영하는 매체는 임하기가 더 어렵다.

그래서 처음엔 이 땅의 자주 민주 통일을 염원하고 그 방도를 고민하는 아이들에게 『우리땐 너희들처럼 정치적이지 않고 낭만이 있었는데』하는 식으로 전혀 고민의 축이 맞지 않는 어설픈 충고를 하게되지 않을까 염려가 되지 않은 바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다행히 나도 80년대 후반에 학교를 다녔고 또 가끔 마주치는 후배녀석들을 볼 때 문제의식이나 고민이 그 때하고 별반 차이가 나지 않음을 확인한 바 있어 용기를 내기로 했다.

요즘은 학보사의 어느 누굴 막론하고 매체혁신에 대해 줄줄이 꿰고 있다.

또 몇몇 언론에까지 「학보의 대중화」란 표제 아래 이런 움직임에 대해 기사화된 것을 보게 되면 처음 매체혁신에 대해 고민하고 없는 책들을 찾느라 헤매던(?) 우리 때와는 사뭇 격세지감까지 느끼게 된다.

그러나 매체혁신이란 용어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널리 퍼졌다는 사실이 곧 매체혁신에 대한 고민이나 내용이 깊어졌음을 의미하진 않기 때문에 이러한 대중화(?)가 남기는 역작용에 대해-노파심에서- 한번쯤 우려하게 된다.

그 단적인 예가 학보의 특성이 사라졌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물론 언제 우리 학보가 그렇게 특성이 있었느냐고 반문하면 할 말은 없지만 이대학보에 이화인의 얘기가 별로 없다.

특히 학보의 각 면을 구성하고 있는 형식이 최근 몰라보게 각 학교별 특성이 사라지고 있는 걸 발견하게 되는데 극단적으로만 보고는 「이대학보」인지 「연세춘추」인지 구분하기 애매하다.

이는 매체혁신에 대해 말하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대개 거의 같은 용어를 구사하는 것과 매혁이 뭐라는 정의와 원론만 있을 뿐 우리 학보와 우리 생활에 어떻게 연관되어지고, 어떻게 해나갈지 구체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드물다는 사실과 연관이 있는 듯 하다.

물론 매체혁신은 기자들이 써내는 기사와 자신의 생활의 괴리를 극복하는 것이고 학보와 독자의 틈새를 좁히려는 시도다.

이러한 큰 고민의 틀은 공유돼야 하지만 구체적인 고민의 내용까지 획일화되는 경향은 내가 보기엔 심각히 우려할 만한 현상이다.

여기까지가 내 쓸데없는 걱정의 전모다.

매체혁신이 한때의 유행으로 그치지 않으려면 형색과 이론만 떠도는 것이 아니라 그 말속에 담겨있는 절절한 문제의식이 되새겨져야 할 것 같다.

더욱 새로운 이대학보를 기대하며 후배들의 건투를 빈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