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의 날 특집 선배들의 글

『덩덩 쿵따쿵 덩덩 쿵따쿵…』. 휘몰이의 속도가 빨라지며 신명은 극에 달하고 풍물굿의 가장 아름다운 소리인 사람들의 함성은 땅의 소리, 하늘의 소리에 섞여 폭포수를 이룬다.

땀이 흠뻑 배인 옷자락으로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을 닦아내자 힘찬 건반반주가 울려퍼지고 「노동자 문화일꾼」의 노래가 시작된다.

이는 11월 2일 있었던 노민문연(노동자민족문화운동연합) 사무전문직지부 집들이의 시작광경이다.

건반반주를 맡은 나는 놀이판의 한복판에 뛰어들어 흥겨움을 한껏 즐기지는 못했지만 노동하는 사람이 창조하는 문화의 건강성을 놀이판을 통해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자리에 함께 할 수 있는 내가 대견스러웠다.

대학시절의 마지막 학기에 여성학을 듣게된 것이 계기가 되어 노동자 민족문화운동을 하게된 나는 지난 4~5년 동안 26년을 뛰어넘는 삶의 변화를 겪었다.

여성학 시간에 강사가 발표한 농촌여성의 현실을 듣고, 나만을 챙겨온 삶에는 변화의 물결이 일었다.

학교에서 시위가 있으면, 「오늘은 무엇 때문에 그러지」하며 그전보다 더욱 관심을 갖고 보았으며, 나이 어린 후배일지라도 옳은 소리를 하면 겸허하게 열심히 경청했다.

그러나 새로운 사실과 진실을 접하면 접할수록 나의 머리는 더욱 혼란스러워졌고, 이 혼란스러움은 명확한 진실을 요구했다.

허나 대학시절을 마감하는 졸업은 나의 고민을 아랑곳하지 않고 들이닥쳤고, 씁쓸한 마음을 달래며 교정을 나서야했다.

졸업이후에는 학원강사로 근무하며 야학교사 활동을 하였다.

야학교사가 되어 노동자들을 교육하고, 나 자신도 노동자가 갖고 있는 생산의 규율과 삶의 건강성을 배우고 싶었던 것이다.

직장을 퇴근하자마자 헐레벌떡 뛰어가 학생들을 가르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몸이 물에 젖은 솜덩이처럼 무거웠지만 학생들의 열성은 하루하루를 보람으로 가득 채웠다.

이렇게 2~3년을 지내고 난 나는 사회의 급속한 변화·발전(그중에서도 노동자들의 거대한 진출)에 발 맞추어 나 자신도 나의 기량과 전공을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일을 해야한다고 생각했고, 고민끝에 민족문화운동을 하기로 맘 먹었다.

즉,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민족음악운동을 실천하는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아직은 활동을 시작한지 얼마 안돼 활동의 폭이 협소하지만, 노동자가 주축이 되는 민족음악을 꽃피우는 그날까지 열심히 하겠다.

그리고 이를 통해 나만을 알던 이기심은 모두가 하나되는 집단성으로, 내가 받았던 교육을 노동자 대중의 것으로 바꿀 것이다.

그러나 활동하면서 안타까운 것은 이런 활동에 뛰어드는 후배가 극히 적다는 점이다.

학교때 열심히 학생운동을 하던 후배중에도 졸업후 엉뚱한 진로를 선택하는 경우가 있으며, 특히 예·체능계의 경우엔 자신의 역량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는 사회운동에 대한 고민과 준비가 부족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신념을 구체화시킬 활동의 장을 못 찾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감히 이런 후배들에게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도 많다』라고 얘기하고 싶다.

과학적인 이론도 중요하지만, 항상 열린 마음으로 더불어 사는 삶을 지향한다면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자신이 수행할 훌륭한 일을 발견할 수 있다고 조용히 충고하고 싶다.

나자신이 사실 이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다는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일하는 것을 보람과 전망으로 체화시키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요즘 대학가는 북한 영화상영을 놓고 경찰과 투석전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11월 3일 학생의 날을 기념하는 집회가 곳곳에서 열렸다.

분단된 조국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이런 투쟁을 바라보면서 나는 학생의 날을 계기로 민족정신, 민족애를 다시 한번 가슴깊이 느꼈으면 한다.

조선여학생을 희롱한 일본학생에 대한 분노로 불붙은 학생의거가 오늘에 있어서는, 이 땅을 자신의 천국으로 만들어버리고, 이 땅의 여성을 양공주로 전락시킨 양키에 대한 분노로 나타나야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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