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생산 위한 주부노동력 사회서 완벽히 무시돼

오늘날 우리가 살고있는 현대 산업사회는 개인의 역량에 의해서 능력이 평가되고 또한 재산이나 권력, 지위, 명예에 의해서 능력의 대가가 주어지는 능력주의 사회다.

이런 능력주의 가치척도 속에서, 가정에서 자녀를 훌륭하게 키웠다고 해서, 가족들의 건강을 위해서 열심히 일했다고 해서, 또 가족들이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도록 편안한 휴식을 제공했다고 해서 어떤 명예나 지위, 보수가 주어지고 있지는 않다.

오랜 역사속에서, 그리고 오늘날 대부분의 사회에서 가족의 부양, 양육, 교육의 일들이 가정속에서 여자에 의해서 행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은 언제나 지불되지 않는 노동이다.

여자의 노동은 아주 당연한 것으로 기대되고 위임되었으며 어느 누구도 그 노동의 가치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만약 그 노동능력이 잘 수행되지 못하였을 경우 개인적 혹은 사회적으로 즉각적인 비판을 받게 된다.

모든 활동의 가치를 경제적 관점에 비추어 보려는 현대사회에서는 가정에서의 생산물이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고, 화폐소득을 가져오지 못하므로 무가치하고 비생산적인 것으로 취급되고 있다.

즉 가정생산을 위한 노동은 보이지 않고 계산되지 않으며 가정생산물은 국민총생산에도 포함되지 않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사노동에만 종사하는 전업주부는 전체 기혼여성의 73% 정도 이다.

또 이들 이외의 취업주부들도 그들 생애의 몇년간은 전업주부였을 것이고, 반드시 그렇지 않더라도 항상 주부로서의 책임을 지고 있으므로, 모든 주부들이 가사노동에 종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들 주부들이 가사노동에 투입하는 시간은 약 하루에 8시간에서 12시간으로 집계되었고 이 시간은 현재 우리나라 취업자의 평균 노동시간인 1일 9.1시간보다 더 많은 노동시간이다.

그러나 취업자들은 노동시간에 대한 대가를 임금을 지급받으며 사회적, 경제적으로 인정받는데 반해, 가사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불리한 상황에 처해있다.

특히 전업주부의 경우에는 가사노동가치에 대한 평가 부재로 사고 발생시에 무직자로 간주되어, 자신이 수행한 노동가치보다 적은 손해배상액을 받는다.

또한 주부는 가정의 재산축적에 기여한 정도를 입증할 수 없고, 사회보장제도에도 자신의 이름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의 근본적인 이유는 가사노동이 여성의 일이며 무보수 노동이라는데 있다.

가사노동에 대한 이러한 잘못된 인식은 가사에만 전념해온 대부분의 주부들을 경제적·심리적으로 피부양자로 만들었고 이혼, 남편의 사망, 교통사고 등을 당할 때 사회적·경제적으로 불이익을 당하게 만들었다.

이와 같은 문제들은 가사노동에 대한 그릇된 평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므로 최근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들은 사회적 지위와 능력을 인정받기 위하여 가사노동을 거부하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고도로 산업화된 사회에서 점차 여성들이 결혼을 하지 않으려하고, 결혼을 하더라도 자녀를 낳지 않으려하며, 또 자녀양육을 가능한 한 사회로 전가하려고 하는 상태로써 표명된다.

오늘날의 어떤 사회적 제도로 가족의 부양, 양육, 교육의 기능을 완전히 대행할 수는 없다.

그러면 과연 누가 사회의 대를 이어주고, 노동력을 재생산하고, 현명한 사회인을 기르는 임무를 수행할 것인가? 이러한 사실은 인간의 생존과 미래에 관련된 일이며, 가정일의 소홀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반사회적 문제인지를 시사하고 있다.

가정의 일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고 사회적 문제이며, 미래의 생활의 질을 좌우하는 우리 모두의 중대사이다.

그러므로 가정의 기능을 회복하고 주부들이 자신의 일에 긍지를 가지고 종사할 수 있도록 가사노동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시점에서 1989년에 개정된 가족법의 재산분할청구권은 가정주부의 가사노동의 가치가 당당하게 법적으로 평가될 수 있는 커다란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즉 개정가족법에서는 주부들의 가사노동으로 인한 가정생활의 협력도를 경제적으로 평가해주는 규정을 직접적으로 두고 있다.

(개정민법 제833조, 839조) 따라서 상속이나 이혼시 가정주부는 혼인중 협력하여 이룩한 재산에 대해서는 당연히 자신의 몫을 갖기 때문에 상속세나 증여세를 부과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난 8월 25일 발표된 정부의 세법개정안은 배우자 특히 처를 실질적으로 차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즉 배우자의 상속세를 폐지하지 않았음은 물론 이혼시 분할받은 재산에 증여세를 부과하는 법안을 제시하였다.

이는 「만민평등」의 헌법정신에 위배될 뿐 아니라 개정가족법의 「양성평등」의 정신에도 위배된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세법안 심의과정에서, 배우자 상속세와 이혼시 분할받은 재산에 대한 증여세는 페지되어야 하며, 혼인생활중의 배우자간의 증여에 대해서는 현실감 있게 공제범위를 대폭 확대함으로써, 여성과 관련하여 불공평·불합리하게 제시한 입법안이 과감히 수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가사노동에 종사하는 개개인 모두가 스스로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깊이 인식하고 사회에 전달하는 것이다.

여자들은 그동안 너무 오랜 세월을 폐쇄적으로 개인적 생활을 위해서 살았고, 그래서 그 자신과 그의 노동에 대해서 사회적 경제적 가치를 스스로 오해하고 있다.

만약 주부가 그의 가사노동에 대하여 늘 불편하고 또 가치없고 빛없는 일이라고 말한다면 그의 가족들도 또한 사회에서도 가사노동을 그렇게 평가할 것이다.

그러므로 주부들은 자신의 능력과 노동의 가치에 대하여 스스로 깨닫고 이를 수행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정당한 평가와 대가를 받도록 요구할 줄 알아야 하며, 이를 논리적으로 규명하여 투쟁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능력과 노동의 가치는 자기 스스로가 지켜가는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타인이 또한 타인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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