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출강하게된 「이화」에서 받은 인상이나 느낌을 써달라는 주문이었다.

다소 상투적이고 의례적인 것이 될 수 밖에 없는 형편이긴 하지만, 내가 이 학교에 처음 들어서서 받은 인상이란 조금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것은 강의실에 가득찬 여학생들의 현란한 모습에 압도되었다거나 한국 여성교육의 요람인 이 대학의 위용에 놀랐노라는 식의 감상도 물론 아니다.

내가 첫 출강을 하던 날은 몹시 무더운 날이었고, 오랫만에 목에 메단 넥타이가 유난히 목줄기를 더 후끈거리게 했던 날이었다.

그리고 그 날은 마침 이 대학의 어른 한분의 장례식이 끝난 다음날이었다.

학과 사무실에서 과의 여러분과 인사하는 동안, 나는 줄곧 이 학교의 부산한 분위기에 좀 얼떨떨해 있었다.

조교가 달려와 출석부를 건네고, 또 다른 조교는 복사기에 매달려 있고, 주임 교수는 나에게 거푸 시원한 것을 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리고 그 분은 문득 창밖에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어제는 많이 울었어요. 자꾸 눈물이 나대요」그 여자교수는 아마 혼자 그렇게 중얼거렸던 모양이다.

「참, 그분이 돌아가셨더군요」 순간 나는 어느 상가에 문상와 상주와 마주 앉아있는 듯한 생각에 빠졌다.

TV에 보니까 동생되시는 분이 누님을 지키고 있던데, 쓸쓸하지만 퍽 아름다워 보이더라는 얘기를 덧붙였지만, 때마침 자지러지게 우는 매미소리에 묻혀버렸다.

아, 이 학교는 지금 모두가 울고 있구나 하고 나는 순간 생각했다.

넥타이 꼭대기에 소형 스피커를 달고 첫 시간 강의를 때우는 동안 나는 줄곧 늦여름의 무더위에 온 몸이 후끈거렸다.

강단에 오래 서 왔지만 나는 늘 첫시간이 그렇게 낯설었던 기억과는 또다른 감정 속에 빠져 있었던 모양이다.

그것은 아마 「이화」라는 이름에 연유하는 나의 선입견의 소산이 있는지도 모른다.

강의실을 메우고 복도를 몰려다니는 이들의 행렬이 나에게 준 인상은 소란스러움이 아니라 음전스러움이었으며 그들의 옷매무새와 차림새는 어지럽다기 보다는 현란하였다.

나는 이것이 타대학 사람이 이화에 보인 친애감의 표현 이상이기를 기대한다.

그들의 음전스러움과 현란함이란 사실로 말하면 이 대학의 오랜 전통을 등에 업은 긍지요 발랄함이라 할 수 있으며, 아마 그것은 사실일 것이다.

내가 이 대학 첫 출강에서 받은 느낌이란 한 어른의 죽음과, 참새처럼 발랄한 학생들과의 지극히 상투적인 대비에 기인한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소중한 비유이기를 바란다.

지금 이화는 「상중」이지만, 오래된 씨는 생명의 싹을 내부에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또한 새 시대의 토양에 뿌려질 것임을 알고 있을 것이다.

스승을 떠나 보내면서 한없이 울었노라는 그들의 슬픔속에는 그러나 스승을 따르되 새롭게 극복하려는 새로운 전통창조의 각오를 다짐하였을 것이다.

떼지어 몰려 다니며 강의실을 메운 그들에게서 내가 받은 위압감이란 사실에 있어 이 땅의 어머니들이 오래 지녀왔던 은장도의 서슬과 지혜에의 열정에 기인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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