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미애 88년 경제학 졸·민가협 간사 오늘은 자네들에게 갇혀 있는 자들의 얘기를 하고 싶네. 얼마전 모일간지에 「시국관련 재소자 40여명 책검열 철폐 등 요구, 구치소 일부건물 점거농성」이라는 사회면 톱기사가 실리면서 소위 「죄인」들의 문제를 사람들이 입에 올린 적이 있네. 갇혀 있으면서도 반성하는 빛이라곤 보이지 않았으니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아도 마땅한 일 아니겠나. 그러나 요 몇달을 사이에 두고 구치소, 교도소 안의 사람들 얘기가 빈번히 신문에 실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 7월에는 마산교도소에서 교도관들의 폭력에 항의했던 양심수들이 통닭구이, 비녀꽂기 등의 고문을 당한 채 징벌방에 갇혀 있었는가 하면, 7월 28일에는 10일전부터 복통을 호소하던 일반 재소자가 교도소측의 방치로 뒤늦게 맹장수술을 받고 수술 4일만에 시체로 변해 교도소 문밖을 나와야 했던 일이 있었네. 더 안타까운 것은 그 재소자는 행형성적이 좋아 8.15 가석방 대상자였다네. 목포에서는 또 교도관들의 폭행을 견디다 못해 폭행중지를 요구하며 단식을 하던 양심수들에게 눈, 코, 입을 막고 「강제급식」까지 하였다네. 그리고 청주에서는 딸을 면회하러간 부모에게 경위야 어찌되었건 총기를 들이대며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을 하였는가 하면, 춘천에서는 항소심 대기중 동료들의 안부를 대기실 창문 사이로 나누었다는 이유로 실신할 때까지 두들겨 맞는 일도 있었다네. 이 세상 어느 곳엔가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하면 자네들 혹시 상상이나 하겠나. 거듭되는 교도소 내의 문제를 보면서 우리는 교정·교화정책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네. 교도소나 법무부 당국의 말대로 사회질서를 어지럽혔던(?) 이들이 여전히 감옥에서도 부당한 요구를 내걸고 시비거리를 만들어 싸움을 유도하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되더군. 그러나 그들의 요구만큼 절신한 것이 없다네. 방안에만 있기 답답하니까 운동시간을 30분만 연장해 달라. 반찬에서 냄새가 나고 어떤 경우에는 벌레까지 기어나오니 반찬의 질을 개선하고 깨끗하게 만들어 달라. 방안에 환기가 안돼 냄새가 나고 곰팡이가 생기니 환기창을 만들어 달라. 변소에서 구더기가 기어 나오니 변소뚜껑을 만들어 달라. 신문을 제발 오리지 말고 들여 보내라. 책은 금서가 아닌 이상 읽을 수 있게 해달라. 이러한 요구에 교도소측에서는 무시하기가 다반사고 요구소리가 높아지면 주먹과 군화발이 온다네. 이러한 문제를 폭력으로 해결할 수 밖에 없는가고 그들에게 되묻지 않을 수 없네. 지극히 일상적이고 생활적인 요구를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교정과 교화를 책임져야 할 곳에서 교정교화는 뒷전으로 미뤄둔 채 행정편의위조로 일을 처리하는데서부터 오는 태도가 아니겠나. 게다가 교도소 측이 재소자들에게 가한 폭력이 장파열이 되고 코뼈가 주저앉고 구타로 심장수술을 받아야 할 정도로 엄청나다네. 이는 문제를 「주먹으로 무마하자」는 생각 이전에 이미 재소자들이 인간으로 보이지 않는 교도관들의 의식과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교정·교화 정책의 문제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네. 작년에 서울대 총학생회장을 지냈던 문광명군이 구치소측으로부터 무자비한 구타를 당한 후 면회온 어머님께 이런 말을 했다더군. 『태어나서 원없이 한번 맞아 봤습니다』 재소자들이 인간으로 보였다면 이런 일이 있었겠는가? 그러나 이들의 모습을 힘없는 자들의 무기력한 모습이라고만 생각하지 말게. 이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생활처지를 개선하고 나아가서는 세계를 변모시키려는 투쟁의 모습일세. 그래서 그들은 감옥안의 감옥에 갇히는 징벌방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항의도 하고 구호도 외치고 단식투쟁도 한다네. 그러나 어느새 고문의 강약에 따라 선택적으로 항의를 하는 우리들로 인해 한 젊은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적이 있었네. 8월 7일 30세의 창창한 나이에 홍제동 대공분실에서 정신적 협박과 잠안재우기 등의 고문을 받았던 젊은이가 「이 정부는 인간을 파괴시킬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죽어갔네. 이 죽음을 놓고 인간성 파괴에 무디어진 우리를 가장 처절한 모습으로 고발하는 젊은이를 우린 만날 수 있네. 그는 우리에게 고문은 정도의 심각함을 따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적으로 없어져야 하는 것이라는 점을 깨우쳐 주고 있네. 사랑하는 후배, 이제 자네들에게 마지막으로 한가지 당부를 하고 싶네. 인권에는 유보사항이란 절대로 없다네. 「이보다 더 큰 인권탄압이 있기 때문에 이것은 그냥 넘어가도 되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네. 혹은 죄지은 자들이 모여있는 감옥이기 때문에 폭력이나 고문을 어느 정도는 허용할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네. 우리가 만일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지키는데 있어서 「유보조항」을 달아 둔다면 그 조항에 의해 언젠가 우리는 우리의 인간됨을 박탈당하고 말걸세. 사랑하는 후배, 이제는 자네들의 「인간선언」을 해야할 때가 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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