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에서 대학시절은 그전의 생활, 생각에서 그야말로 비약적으로 변화·발전을 가져왔던 시기였다.

그러나 그것은 머리 속에서의 변화였고, 머릿속의 변화는 냉혹한 사회현실과 부딪쳤을 때 힘없이 무너져 버렸다.

온실 속에서 키운 꽃처럼. 그래서 난 대학을 졸업할 때에는 무척 허약해져 있었고, 졸업 직후 시작된 결혼생활 초기에는 더욱 그랬다.

그러나 온실의 꽃은 시들었지만 이에 뿌리를 내린 올바른 삶을 추구하던 싹은 냉정한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단련을 받으며 조금씩 커 나갔다.

그리고 이 싹은 달동네로 이사와 살면서 다시 한번 비약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고 나는 이제는 웬만한 비바람은 이겨낼 수 있는 주부가 되었다.

물론 앞으로도 더 많은 단련을 겪어야만 되겠지만. 이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바로 「내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대학 4학년때 앞으로의 사회생활을 어떻게 할 것인가 깊이 고민하기보다 집안에서 그간 부모님들과 부딪히는 것을 우선 벗어나고자 생각해 낸 것이 결혼이었다.

그렇게 도망간 결과인 결혼초기가 엉망이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또 결혼후 일자리가 마련되었을 때 어린 딸을 두고 어찌 일을 할 수 있을까 걱정했던 것은 사실 남편이나 친척들보다 내가 더 심했다.

일하랴 살림하랴 아기보랴 정신없을 것을 생각하면 남편, 친척들의 반대를 핑계대고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았다.

편하게 살고 싶어 망설이는 나 자신을 보고 힘껏 채찍질하며 일어섰을 때 걱정했던 것보다 모든 일이 수월하게 풀려갔다.

그 경험은 달동네로 이사가는 과정에서 두드러졌다.

맨날 청바지에 운동화, 농촌활동, 세미나, 공장활동하느라 여행 한번 못 갔지만 그래도 내 생애중 가장 호화스럽고 찬란했던 대학시절을 통해 배운 「나는 역사와 사회와 가난한 사람들에게 갚아야 할 바가 있다」는 생각의 실현은 결혼후 분홍빛 커텐이 쳐진 아담한 연립주택에서 살 때보다 달동네에 들어가 일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더욱 주위의 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특히 자녀교육을 앞두고 남편과 부모님들은 가난한 동네의 불량한 교육환경을 크게 염려하며 그런 곳으로 일부러 자식들을 데려가는 나를 꾸짖었다.

쉽게 말해 남들은 자식을 위해 어떻게라도 계층상승을 하려고 애쓰는데 나는 오히려 계층하강(?)을 자초하는 것으로 보였으니 부모님들은 「어미의 잘난 척하는 사회활동 때문에 애들이 희생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가족의 반대끝에 남편은 시댁에 남고 나만 애들을 데리고 이사온 첫날 딸아이들은 대낮에도 불끄면 햇빛 한줌 안 들어오는 초라한 방에서 『여긴 우리 집 아냐. 할머니한테 가자』고 밤새 울었다.

가족들은 이런 결정을 나만을 위한 「이기주의」라 했지만 나의 일이 이웃과 사회를 위한 옳은 일이며 내 자신과 내 가족의 발전을 위해서는 좋은 일이라고 확신이 섰을 때, 주변의 반대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걱정하던 내 딸아이들은 그지없이 밝고 슬기롭고 게다가 어려운 이웃·친구들을 돕는 자세가 생활에 배어있고, 엄마를 이해하고 사회문제를 볼 줄 아는 자세까지 갖추었으니 그 때의 선택이 옳은 것이었다는 사실이 증명되지 않았는가. 난 결혼 12년 동안 줄곧 몸으로 내 생활을 닦고 변화시켜 온 사람이라 후배들에게 멋진 말을 할 줄 모른다.

또 달동네 아줌마들 - 국민학교 중퇴나 겨우 졸업한 사람들이 수두룩하지만 대학졸업 여성들보다 훨씬 똑똑하고 주체적이고 성실하고 지독하게 부지런한 사람들과 살다보니 내가 이화대학 졸업자임을 잊어버렸고 생각나면 오히려 부끄럽기도 해서 모교를 생각한 적이 별로 없다.

오히려, 우리의 일을 옆에서 도와주시는 교수님을 만나러 어쩌다 한번씩 모교를 들를라치면, 달동네와는 엄청나게 다른 호화스럽고 안락한 분위기가 내 마음에 강한 거부감마저 준다.

제 자신들이 잘난 것이 아니라 부모를 잘 만난 - 이런 사회에서 자식을 대학까지 보내는 부모중 돈 잘 버는 부모란 다 그렇고 그런 사람들 아니겠는가 - 덕분에 생기있게 젊음과 지식을 과시하고 다니는 것을 보면 우리 동네와 비교되어 기분이 안좋다.

대학 졸업자인 나도 그러한데, 정말 어렵게 어렵게 고생하며 공장다니고 생활하는 다른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기분은 어떨까? 어쨌든 동문 후배들에게 얘기할 수 있는 귀한 기회를 얻었으니 길지도 짧지도 않은, 그러나 아직은 자신있고 전망있는 36년간의 삶에서 얻은 것을 들려주고 싶다.

먼저 대학 4년을 열심히 바쁘게 그러나 앞으로의 인생에 도움이 될 내용을 담고 살라는 것이다.

대학 4년은 특정한 계급에게만 부여된 일종의 혜택이며 전쟁터같은 사회에 적응하는데 우위권을 보장받도록 준비하는 유예기간이다.

그러나 하기에 따라선 이 모순 많은, 할 일 많은 사회에서 올바른 역할을 수행하도록 성장할 수 있는 기간이기도 하다.

이 기간을 통해 후배들은 자신의 삶에 있어서 「주체적 여성」이 되도록 스스로 끊임없이 애쓰기 바란다.

또한 몸으로 살기를, 행동하기를 주저하지 말라는 것과 무엇보다 「자신과의 싸움」을 중요시 여기고, 거기서부터 애겨내기를 바란다.

그리고 자신이 특권계급이라는 것을 항상 잊지말고 주변 이웃을 생각하고 그 빚을 갚는데 인색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럴 때 이화는 진정 해방이화, 민족여성이화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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