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 3, F, 5, …’ 병원의 엘리베이터에는 4층이 없다.

F층이 있을 뿐이다.

숫자 4가 한자 死와 발음이 같다는 이유로 죽음을 상징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간이 얼마나 죽음이라는 주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가를 보여주는 예다.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이 바라보는 죽음은 반감과 공감이라는 두 가지 성질을 동시에 갖는데, 이 성질에 따라 죽음에 대한 공포감의 원인도 달라진다.

반감에 따른 공포감은 우선 인간이 죽음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비롯한다.

인간은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확실하지 않은 것에 대해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실체가 확인되지 않는 죽음에 대해 무서움을 느끼는 것이다.

죽음으로 인해 겪게 될 상실감 역시 죽음을 두려워하는 또 하나의 이유로 지적된다.

인간은 죽음이 현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가를 생각함으로써 죽음의 의미를 파악하려고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죽음을 상상했을 때 떠올리게 되는 것은 가족·친구·부와 명예 등이다.

이는 일생을 통해 일궈낸 자신의 모든 것이 한 순간에 없어진다는 상실감으로 이어지고, 이에 대한 거부 반응이 죽음에 대한 공포감으로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죽음에 대한 공감은 인간의 무의식이 순간적으로 죽음에 이끌리게 되는 것을 말한다.

자신도 인식하지 못할 만큼 짧은 찰나에 죽고 싶다고 느끼는 감정이 죽음에 대한 공포심을 초래한다고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높은 곳에서 밑을 내려다보는 경우 사람들은 떨어질 리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선다.

이 때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 자체가 아니라 자신이 발을 앞으로 내디딜 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다.

즉 사람들이 죽음을 무서워하는 이유 가운데는 은연 중에 죽음으로의 길을 선택할 지도 모르는 자신의 무의식에 대한 두려움이 포함돼 있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본능과도 같기 때문에 외면한다고 해도 인간의 무의식 속에 남아서 오히려 허무감과 같은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연세대 유호종 교수(윤리학 전공)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적극적인 탐구를 통해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다”며 무섭다고 해서 무조건 회피하기 보다는 죽음을 탐구하고 정확히 알아야한다고 강조했다.

죽음에 대한 연구 가운데는 철학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목소리가 특히 높다.

군산대 임규정 교수(철학 전공)는 “철학은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는 학문으로 사회학·의학 등 다방면에서 논의되는 죽음에 대해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라고 설명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다가올 우리 삶의 한 부분이기에 제대로 된 삶을 위해서는 죽음에 대한 바른 이해가 뒷받침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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