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잔 다르크·소크라테스는 재판장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숨을 거뒀다는 공통점을 갖고있다.

성인·전쟁영웅·철학자 조차도 법의 판결 앞에서는 한낱 ‘죄인’일 뿐이었던 것이다.

지금의 우리 현실과는 다르지만 그 시대에 위용을 떨쳤던 유명한 재판들을 살펴보자. ▷1131년 프랑스의 필리프 황태자가 돼지 때문에 말에서 떨어져 죽는 일이 발생했다.

돼지는 살인죄가 적용돼 처형 당하고 말았다.

이와 같이 9세기부터 19세기까지 유럽에서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동물도 법정에서 재판을 받았다.

당시 사람들은 살아있는 모든 생물이 법 앞에서는 동등한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동물재판은 주로 프랑스에서 열렸으며 150여건에 달했다.

사람들은 재판 과정에서 피고 동물에게 옷을 입혔으며 본보기를 보인다는 차원에서 처형장에 다른 동물들을 참관시키기도 했다.

시간이 흐른 후 동물의 정당한 자기 변호에는 한계가 있다는 이유로 동물 재판은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분위기를 몰아서 한 사람을 사회에서 매장시키거나 처벌하는 것을 마녀 사냥이라고 한다.

이 말은 1692년 미국의 세일럼에서 열린 마녀 재판에서 유래한 것이다.

마녀 재판은 이상한 죄목을 만들어 정치적인 경쟁자를 제거하려는 이들에 의해 생겨났다.

당시 마녀 재판은 희생된 여성이 만 여명에 이를 정도로 엄청난 규모였는데 ‘우리집 가축이 죽은 이유가 너의 빨갛게 충혈된 눈 때문이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하는 여자도 있었다.

마녀들을 살려 둬서는 안된다는 성경 구절과 마녀에 대한 사람들의 미신이 마녀 재판을 더 부추겼다.

▷ 동화 ‘행복한 왕자’의 저자 오스카 와일드가 미소년을 좋아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1891년 38세였던 그는 더글라스라는 15세 소년에게 남다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소년의 아버지 카슨은 와일드를 고발한다.

그는 와일드가 더글라스에게 보낸 편지 중 ‘황홀한 입술을 위해’·‘빨간 장밋빛 입술’이라는 표현이 그의 비도덕성과 동성애자적인 성향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이에 와일드도 변호사를 선임해 대응했다.

하지만 결과는 와일드의 참패. 10년 전부터 영국에서는 동성애가 범죄로 취급됐기 때문에 그도 예외일 순 없었던 것이다.

1895년 그는 2년 감옥형을 선고받았으며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완전 파산하게 됐다.

▷ ‘43세, 아이는 둘이며, 수입이 좋고, 멋진 생활을 즐기는 홀아비가 결혼을 전제로 과부를 구합니다’ 결혼사기꾼 앙리 랑드뤼가 낸 광고 문구이다.

문제는 이 문구를 보고 찾아온 10명의 여자가 앙리와 함께 여행을 떠난 이후 소식이 끊겼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앙리가 자신은 왕복표를 사고 여자의 표는 편도표만 구입했다는 이유를 들어 그가 살인자일 것이라 추측했다.

또 여자들의 재산이 모두 앙리의 소유로 밝혀진 것이다.

결국에 그는 여자들의 시체가 한 구도 발견되지 않았지만 간접 증거만으로 집행한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아직도 이 재판은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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