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매트릭스’ 속에 보이는 컴퓨터 모니터의 011001000 등의 숫자는 매트릭스 속 인물들의 행동을 결정하는 일종의 명령어다.

영화처럼 극단적인 상황까지는 아니지만 돌이켜보면 우리의 삶도 숫자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여러 사람의 일상 속 숫자 이야기를 종합해 가상인물 이백원씨의 하루를 꾸며봤다.

“××제공 시보 7시를 알려드립니다.

띠띠띠 띠∼” 자명종 대신 라디오의 알람기능을 사용하는 이백원씨는 오늘도 어김없이 7시에 잠을 깬다.

학교에 가려면 12번 마을버스를 타고 2호선 지하철을 타야한다.

지금 시각은 9시 13분. 채플이 시작되는 10시 전에 도착하려면 시간이 빠듯할 듯하다.

241 이대역에 내린 이백원씨는 행여 늦을세라 전속력으로 대강당을 향해 달려간다.

9시 59분 40초, 문을 막 닫으려는 순간 초인적인 힘으로 세이브! 오늘도 교목실 직원이 이름대신 좌석표 뒤에 붙은 숫자로 출석을 체크한다.

이 순간 이백원씨는 ‘이백원’이 아니라 1층 마19열의 09번이다.

채플이 끝난 10시 30분, 그는 공강시간 동안 인터넷 서핑을 할 심산으로 중앙 도서관에 간다.

도서관 PC실은 각 컴퓨터마다 번호가 정해져 있어 반드시 부여받은 번호표의 번호대로 가서 앉아야한다.

이백원씨는 25번이 적힌 번호표를 받아들고 해당 컴퓨터 앞에 앉는다.

한참 인터넷 서핑을 하고 놀다보니 슬슬 배가 고프다.

이백원씨는 친구 몇명과 함께 중식당에 갔다.

그들은 8가지 진귀한 재료로 만든다는 ‘팔보채’를 먹기로 한다.

주문을 받은 종업원이 주방을 향해 크게 소리친다.

“17번에 팔보채 하나 있어요∼” 식사를 끝내고 계산대로 가자 주인 아주머니가 종업원을 향해 묻는다.

“얘, 김군아∼ 이 손님들 몇 번 테이블이었어?” 이내 날아오는 종업원의 대답, “17번이요.” 식사비 25000원을 지불하고 친구들과 헤어진 이백원씨는 송금할 일이 있어 은행으로 향한다.

은행에 간 그는 기계에서 ‘532 대기인수 13명’이라고 적힌 번호표를 뽑아든다.

새로나온 잡지를 읽느라 정신이 팔려있던 이백원씨는 “532번 손님 안계세요?”하는 은행원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어 창구를 바라보니 전광판에는 532라는 숫자가 반짝거리고 있다.

은행에서 나와 강의를 들으러 학관 414호로 간다.

수업이 끝날 즈음 남자친구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왔다.

‘오늘이 우리 만난 지 22일 되는 날이야. △△극장 3관 6시10분 영화표 예매해 놨어’일명 ‘투투데이’를 기념하기 위해 이백원씨는 택시를 타고 남자친구를 만나러 간다.

택시비가 무려 7300원이나 나왔지만 다행히 제 시간에 도착해 영화를 볼 수 있었다.

남자친구와 놀다보니 어느덧 막차 시간이 가까웠다.

가까스로 11시 41분 막차에 올라탄 이백원씨는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남자친구는 단축다이얼 1번이다.

휴대전화 단축다이얼의 첫번째 자리는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집에 돌아온 이백원씨는 오늘 하루 일을 회상하며 일기장을 꺼내든다.

곰곰이 오늘 일어난 일을 떠올리던 그는 일기장의 첫머리를 써 넣는다.

2004년 3월 22일 월요일 오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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