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당신이 시험을 앞두고 머리를 감았다는 이유로 체포된다면? ‘시험날 머리를 감지 말라’는 것은 농담처럼 전해지는 금기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키는 사람도 있지만 이를 어긴다고 해서 죄가 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민담 속 금기가 실제 법으로 제정되는 일도 있다.

근친끼리 정을 통하지 말라는 것은 가장 엄격한 금기 가운데 하나다.

씨족단위였던 신석기 시대의 ‘족외혼’은 근친혼 금지법의 원류가 됐다.

현재 독일은 형법 제173조에 근친상간 죄를 명시하고 있으며 미국·아시아 일부 국가는 사촌 간 결혼을 금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법률은 민법 제817조에 친족관계의 혼인은 ‘혼인 무효 사유’로 인정, 사실혼 관계라도 무효로 처리한다.

또한 민법 제809조는 1997년 위헌 결정으로 사실상 폐지되기 전까지 동성동본끼리의 결혼을 금지한 바 있다.

친족 간 결혼을 금한 이유는 유전학적으로 기형아 발생율이 높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촌지간인 부부의 아이가 선천적 기형·유전병일 확률은 평균수치인 3.45∼4.55%보다 1.7∼2.8% 높은 6.25% 정도이며 팔촌 간에는 0.39%까지 떨어진다.

고려대 김탁 교수(산부인과학 전공)는 ‘동성동본 금혼규정의 의학적 견해’라는 글에서 “팔촌 이내의 근친혼은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촌수를 헤아릴 수 없는 동성동본의 혼인은 유전학적으로 문제될게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법의 위헌 결정 당시 유생들은 “동성동본 금혼법은 민족 고유의 미풍 양속이다”고 주장해 풍습상의 금기를 법과 동일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동성애 역시 현재는 일반화된 금기지만 그렇지 않은 때도 있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동성애는 보편적인 사회 현상이었고 과거 뉴기니 부족사회는 동성애가 성인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었다.

현대에 동성(同性) 결혼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혼인신고가 불가능하지만 2001년 네덜란드가 최초로 동성 결혼을 합법화한 후 이를 인정하는 국가들이 증가하는 추세다.

과거에는 금기가 곧 법이던 시대가 있었지만 현재는 법을 논리적 체계 속에서 연구하고 평가하는 시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금기시돼 왔기에 이유도 모른채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는 법은 없는지 다시 한번 살펴봐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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