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실미도』는 북한에서만 보내는 줄로만 알았던 ‘무장공비’를 우리도 보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했다.

자칫 국가 명예에 타격을 줄 수도 있는 소재였지만 이 영화는 천만명이 넘는 관객을 모아 큰 성공을 거뒀다.

대중문화 평론가 이동석씨는 “금기를 많이 깰수록 그 사회의 성장 가능성은 커진다”며 “영화 실미도의 흥행은 금기깨기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금기는 본래 인간의 생존 문제와 관련해 조심해야할 행동에서 생겨난 예가 많다.

마을 우물에 금줄을 쳤던 우리나라 옛 풍습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많은 사람이 함께 마시는 물이 오염돼 혹 전염병이 돌진 않을까하는 우려에서 비롯한 효엄 있는 민간 위생 방법이다.

이처럼 금기는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기 때문에 지키지 못했을 때 오는 심리적 불안감이 크다.

별다른 물리적 제제없이도 사람들이 금기를 잘 지키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서울대 국어교육연구소 선임연구원 허재영씨는 “금기는 지금까지 인간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해왔다”며 “사회 구성원들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는 데 좋은 지표가 된다”고 말한다.

또 금기는 ‘자연’과‘신’이라는 경이로운 존재와 연결돼 더욱 공고하게 지켜지는 경우가 많다.

성서에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날에는 죽으리라’는 구절이 있다.

이 때문에 많은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입에 담는 것조차 삼가하기도 했다.

지난 2002년 일부 과학자들이 경쟁적으로 복제아기를 탄생시켰다고 주장하면서 학계에 윤리 논쟁을 불러 일으킨 일이 있었다.

당시의 여론은 ‘금기를 깨고 싶은 개인적인 욕망을 위해 과학을 악용했다’는 비난이 거셌다.

최근에 서울대 황우석 교수팀이 인간 배아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하자 다시 한번 국제사회의 우려가 불거지고 있다.

이에 대해 건국대 최창모 교수(히브리학 전공)는 “금기는 ‘해서는 안될 것’과 그것을 깨고 싶다는 ‘유혹’의 경계 지점”이라며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회적 강자들이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금기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또한 독재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금기를 사용하기도 했다.

박정희 유신정권은 밤10시 이후에 민간인의 통행을 금지했다.

통행금지로 인해 사람들의 밤 활동을 막음으로써 밤문화 자체를 금기시하게 했던 것이다.

현대에 와서는 이처럼 권력이 금기를 만드는 일들은 많이 사라지고 있다.

작년 검찰이 유례없이 철저히 수사한 대선자금 비리를 두고 정치계에서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검찰수사의 금기가 깨졌다’고 했던 것이 그 예다.

과거에도 몇 차례의 수사를 진행했지만 청와대라는 막대한 권력 앞에 힘을 쓰지 못했던 검찰이 이번에는 제대로 칼날을 뽑아든 것이다.

금기는 어느 사회#나 존재한다.

인간 사회가 일정한 질서 속에 그 틀을 유지하고 있는 한 이는 계속 존재할 것이고 또한 금기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려는 무리도 공존할 것이다.

허재영씨는 “인간 정신의 자유로움을 억압하는 것이라면 금기 분야라고 하더라도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며 “창의적인 사람은 금기를 깨고 능동적으로 탐구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금기가 올바른 사회통제의 기능을 계속해 나가기 위해서도 이제는 사라져야할 금기 또한 있는 것이다.

현대 사회의 금기깨기가 앞으로의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 줄지 자못 궁금하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