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로 체육학과를 설치한 곳이 ‘이화여전’(이화여대의 전신)이다.

이는 종전에 교과목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던 체육을 하나의 독자적인 학문으로 인정받게 했던 일종의 사건이었다.

1962년 체육학과는 세개의 학과(체육·건강교육·무용)로 전공이 분화돼 체육대학으로 승격됐다.

최초로 출발했던 우리학교 체육대학의 역사에서 여성 체육의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굵직한 사건들을 찾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선배들의 입을 통해 우리가 알지 못했던 우리학교 체육대학의 옛 이야기를 잠시 들어보자. “이화인의 인기를 독차지한 농구부” 박양계(체육·91년 졸) 제가 학교를 다닐 때는 농구부에 대한 일반 이대생의 호응도 커서 경기가 있는 날에는 수업을 빠지면서까지 관람을 와줬어요. 초쿄렛을 사주며 목이 터져라 응원하던 이화인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나요. 선수들이 입는 유니폼도 우리학교 미대 교수님께서 체대의 상징인 녹색과 이화의 상징인 흰색으로 직접 디자인해 주셨죠. 다 지나간 추억인데 이야기하다보니 새삼 그리워지네요. “여자 소프트 볼 팀은 우리가 최초” 박경현(체육·91년 졸) 소프트 볼 국가대표선수로 뽑혀 1990년 북경아시안게임에서 남북한 첫 대결에 출전했어요. 두 경기를 1-0, 2-1로 모두 승리했던 기억이 나네요. 비가 오는 날이면 운동장이 진흙탕이 됐었어요. 그럼 유니폼이 물에 흠뻑 젖어 버리잖아요. 그래서 남자 심판들이 고개를 돌리고 그랬었죠. “배구 팀은 라이벌이 없을 정도” 김화복(체육·88년 졸) 제가 학교 배구부에서 뛰었던 80년대에는 숙대·홍대·이대 세 학교가 라이벌로 유명했어요. 하지만 우리학교가 계속해서 우승을 차지했죠. 그 때는 교수님도 많이 동참하는 분위기여서 시합때면 응원도 오셨어요. 갈수록 그런 모습이 없어지는 것 같아 좀 아쉽네요. 지금으로부터 약 백년 전인 1912년, 이화여전의 수업시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운동이었던 농구가 소개됐다.

이화여전의 운동장에서는 댕기를 땋은 여학생들이 긴 치마 저고리 차림으로 농구를 하는 풍경이 벌어졌다고 한다.

1932년에는 테니스와 유사한 게임인 제10회 전 조선 여자 정구대회에서 최초의 여성심판으로 김복한·최이순 두 이화여전 학생이 등장해 장안의 화제가되기도 했다.

또 이화여전의 체육활동은 여자 농구·소프트 볼 경기·배드민턴·궁도·필드하키·탁구·포크댄스 등의 각 종목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소개하는데 기여했다.

체육대학 성립 후 1976년에는 배구부가 1984년에는 소프트 볼 팀이 창설돼 학내 외에서 인기를 모았다.

이어 1990년 여자축구부를 새롭게 창단했다.

이는 축구가 남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새로운 시각을 한국 스포츠계에 심어주는 계기가 됐다.

이처럼 우리학교 체육대학은 새 체제의 도입과 다양한 과외활동을 통해서 체육 교육의 기틀을 마련했다는데 의미가 크다.

또한 각종 경기대회에서는 선수와 지도자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여성체육계의 뿌리가 되는 우리학교 체육대학이 계속해서 ‘최초’의 역사적인 사건들을 만들어가길 기대해본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