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로우의 「월든」을 읽고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세속적인 욕망을 자극하던 다른 책들과 달리 「월든」은 뜬구름 잡는 잔소리로 시작해, 호수의 푸르스름한 빛깔과 물고기들 비늘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다 끝이난다.

낯선, 이젠 거부되고 있는 욕망을 던지고 있는 월든은 몰입할수록 오히려 고통스러웠다.

나 자신은 예외일 것이라고 부정하고 싶은 현실이 여과없이 녹아있었다.

「월든」은 중고생 필독 목록에 오를 만큼, 그 이름만으론 식상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월든의 책장 한장, 아니단 한 줄의 글도 철저하게 거부하는 삶만이 주어져 있는 지금의 현실은 그 유명세만큼이나 역설적으로 느껴진다.

그가 예찬한 생태주의에 대해선 여기에선 미뤄둬야 할 것 같다.

「월든」은 저자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자급자족의 삶 2년여 간을 기록하고 있다.

월든이라 불리는 호수 근처 숲에 1년치 집세 정도를 들여 집을 짓고, 주변 텃밭을 가꿔 입에 풀칠하고 남은 것은 내다 팔아 아주 가끔 외식을 하거나 꼭 사야만 하는 것들을 사들였다.

그런데 정말 놀랄만한 사실은 그가 1년간 살아있기 위해 들인 노동은 고작 7주 정도였다.

육즙이 흐르는 식단, 도시에 지어 올린 집 그리고 기차여행(기차표를 사기 위해 일하는 시간에 차라리 걸어가는 것이 더 빠르다고 증명한다)따위를 포기하면, 안식일 만큼만 일하고 일하던 날 만큼을 안식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증명하고 있다.

그는 남는대부분의 시간을 공부 하는데 보내거나 낚시 내지는 자연을 음미하는 신선놀음에 보냈고 결과적으로 무척이나 만족스러웠다고 쓰고 있다.

그가 이런 삶에 뛰어든 것은 대부분의 인간에게서 즉 주변의 이웃에서 느낀 고통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노동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굳이 이 책을 권하는 것 같진 않다.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독자가 가난에 인생살이가 쉽지 않아 때로는 숨을 헐떡 거리거나, 이 책을 읽는 시간조차 빚쟁이에게 훔친 시간이란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적고 있다.

몸도 마음도 지친 절망의 인생을 조용히 보내고 있는 이들을 위해, 탁상공론이 아닌 현실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월든의 진정한 독자는 이미 체념이라는 확인된 절망에 익숙해진 사람들이다.

인도의 승려들은 주변에 불을 지피고 앉아있거나, 불구덩이에 거꾸로 메달리는 고행을 행한다.

하지만 이런 고의적인 갖은 고행도 그가 매일같이 목격하는 광경보다 더 놀랍거나 충격적인 것은 아니였다고 한다.

하루 12시간 이상 노동의 댓가는 죽으라고 치뤄야 하는 집세와 우유 내지 고기 값을 치르면 빠듯한 것이다.

굳이 150년전의 콩코드 마을로 거슬러 가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동에 바친 인생의 댓가로 집, 배 주위의 비곗살과 이미 늘고 쇠약해진 몸, 그리도 다 노년의 여가정도일 것이다.

물론 필요 이상의 노동이 지금의 발전을 가져왔다.

비록 대다수가 누리는 화려함이 아닐지라도, 무엇을 위해 사회를 이렇게 발전시켜 왔는지 되묻고 있다.

기차는 사람을 밟고 달리며, 집이 사람을 소유하고 또 상류층은 부자연스러울 정도의 뜨거움에 몸을 데우고 있는데 말이다.

사람들이 찬양하고 성공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삶은 단한 종류의 삶에 지나지 않는다.

왜 우리는 다른 여러 종류의 삶을 희생하면서까지 한 가지의 삶을 과대 평하가는 것일까에 대해 묻고 있다.

그는 고통이 8할인 삶이 뭐가 그리 아쉬워서, 이런 저런 삶의 궁리를 실험하지 않는지 한탄한다.

그리고 그의 삶의 방식을 그대로 쫓을 수제자 역시도 사양한다.

아버지의 삶을 그리고 이웃의 길을 가지 않도록 간곡히 당부한다.

자신의 삶의 방식을 스스로 찾아 나서라고 말한다.

항상 반응은 같았다고 한다.

이미 사회구도 자체가 노동에 시달리지 않는 삶 자체를 조금도 허용할 여지가 없다고 말한다.

현재의 삶을 신봉하고 살면서 변화의 가능성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이 길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고 말하더라고 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믿고 싶은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소로우의 삶의 방식에도 하나같이 ‘그냥 가난과 고통에 시달리겠다’며 고개를 내저었다고 한다.

다들 무언가를 하나씩은 움켜쥐고 그것을 놓지 못해 결국 가난할 권리까지 잃어버리는 것이다.

물려받은 가축과 농토 역시도 평생을 등에 짊어지고 고된 노동으로 끌고가야 할 족쇄일 뿐이라고 한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선택 중 가장 현명한 것은 ‘애초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것’이라고 말하던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현자 000의 말을 소로우는 거부한다.

소박하고 현명하게 산다면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힘든 일이 아니라 오히려 즐거운 것이라고, 소로우는 ‘자발적인 빈곤’이라는 이름의 유리한 고지에 오를 권리를 찾아 나서라고 등을 떠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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