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여성학 2000 국제학술대회 참가기

허라금 (여성학과 교수) "동아시아와 여성" 이 표제어에서, 우리는 동아시아라는 범주와 여성이라는 범주의 단순 병렬이 아니라, 여성을 동아시아라는 맥락 속에 위치 지우려는 의지를 읽는다.

이때 "동아시아"의 맥락이란 무엇인가? 한, 중, 일을 지칭하는 동아시아가 여성과 맺는 관계는 무엇인가? 단순한 지리적 인접성 때문에 이들 지역의 여성을 묶어 보게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동아시아"는 때로는 유교 문화권으로 때로는 한자 문화권이라는 언어적 동질성 때문에 함께 묶이기도 하지만, 여성이 동아시아라는 맥락 속에서 갖게 되는 의미가 전통적 차원에서 갖게되는 동질성에 머물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이상의 물음들을 10월 18일(수)~21일(토)에 이대 한국 여성연구원과 아시아 여성학 센타가 공동주최한 "아시아 여성학2000" 국제 학술대회와 연결시켜 생각해보고 싶다.

이 곳에서도 역시 타이틀 안에 들어있는 "아시아"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해야 했기 때문이다.

지리적으로 주어져 있는 특정 지역을 가리키는 지칭적 의미로 사용할 것인지, 아니면여성(학) 안에서 차이를 구성하는 형용사적인 의미로 사용할 것인지. 형용사로 해석된 "아시아적" 이라는 말은 자칫 아시아다움이라는 실체 또는 아시아적인 본질을 상정하게 만들고, 결국은 누가 아시아적 기준을 정하는 주체일 수 있는가라는 끝나지 않는 논쟁에 빠지게 한다.

또한, 아시아 지역 여성의 삶과 생각과 사건들의 의미를 올바로 정초해 줄 진정한 "아시아적인 것"을 추구하게 될 때, 그것은 역동적인 힘들 사이에서 변화해가는 구체적 여성 현실을 추상화하고 동질화할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는것이다.

반면에 , 아시아 지역에서의 여성(학)이라고 하면 이런 부담을 벗어나 아시아로 분류되는 지리적 위치에서 삶을 꾸려가는 여성들 또는 그들의 경험에 대한 여성주의적 연구로 보게 된다.

이것은 아시아다움을 상정할 때 지게되는 규범적 논쟁의 부담을 피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곧 이런 지역적 분류가 어떻게 여성과 여성의 삶을 연구하는 분석적 범주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정당화가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본질론과 임의성 이 둘다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아시아 여성" 또는 "동아시아 여성"을 (지칭적 의미의 ) 아시아 여성들이 현재 여기에서 모색하고 실천해가는 지향적 가치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아시아 여성"은 문화적 역사적 공통성의 토대 위에 이미 주어진 것으로서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미래에로 이어지는 지정학적 역사 안에서 여성들이 수행해가는 어떤 것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아시아 여성의 의미를 이해하게 될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역사적 억압 형태들이 "여성" 범주들과 관계되는 방식들을 각국 여성들이 처해 있는 상황 속에서 명료화하는 일일 것이다.

그것은 하나로부터 다른 모든 것에 대한 정의를 도출하는 일반화의 오류를 반복하지 않는 방법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언어, 종교, 피부색깔을갖고 있는 인도, 방글라데시,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대만, 중국, 일본, 한국 여성들이 "아시아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만나, 문제 삼는 여러가지 이슈들을 통해 같음과 다름이 교차하는 지점들을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고 이번 대회는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자신이 속한 국가와 민족, 종교, 체제라는 경계에 따라 서로 다른 위치에 놓이게 되는 여성들 사이의 입장 차이가 없을 수 없지만, 또한 그 경계를 넘어 여성들 간의 연대의가능성들 역시 이런 만남을 통해 분명해진다.

식민화된 역사를 갖고 있는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가 2차대전 이후 취했던 개발 프로젝트 안에서 여성들이 겪어온 경험이나, 최근 아시아 국가가 겪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여성들이 부딪치는 생존의 문제들은 서로를 이해하는 공통의 장이었다.

이번 회의의 경우, 각 국 여성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었던 문제 중 하나가 매매춘이었다.

실제로는 매매춘 산업을 통해 국가 경제적 부를 추구하면서도 표면적으로는 이를 금지하는 이중정책 속에서 희생되는 매춘 여성들의 실상은 서로 다를 바가 없었지만 그 방식은 국가별 차이가 있었고, 따라서 무엇이 유효한 해결책인가에 대해서는 여성학자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견해들이 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아시아" 또는 "동아시아"라는 미리 상정된 개념이나 이념에 의해 재단되지 않는 열린 지평 위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역사와문화적 전통들이 여성의 억압과 차별에 어떤 방식으로 작용해왔고 작용하고 있는지, 각 지역의 정치, 경제적 상황들이 여성의 아픔에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 지를 더 많이 볼 수 있게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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