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노력하고 다르게 해도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심리적으로 학습된 무력감. "한인영 교수(사회복지 전공)는 계속되는 남편의 신체적, 정서적 학대 즉, 폭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여성 스스로 한계지어 버리는 것으로 "학습된 무기력"을 설명한다.

이는 누구라도 지속적인 폭력과 사회통제로 인해 부당한 대우에 대해서도 스스로를 속박하게 되는 상태, 즉 남성 지배적인 가부장제 이데올로기 속에서 실제로는 불합리하지만 당연히 여성이기 때문에 양보하고 참아야 하는 오늘날 이 땅의 여성들이 쓰고 있는 굴레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예라고 하겠다.

이러한 굴레는 대부분의 사회 속에 비슷하게 잔존하고 잇다.

경제적 선진국 또는 후진국이라고 해도 기본적인 여성의 문제에 있었서는 별 차이가 없는 것이다.

사회 경제의 발전 정도에 따라 아주 미약하게 차이가 나는 부분은 "여성복지" 혜택 정도이며 이것을 마치 여성들의 사회권의 신장으로 오해하고 있는 듯 하다.

물론 제도의 개선을 통해 조금씩 편익을 증진하고 권익을 보호하는 의미는 있을지 모르나 근본적인 여성들의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오히려 더 남성중심적이기 때문이다.

여권론자들은 사회복지가 "숨은 성차별적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한다.

생리휴가, 탁아소 등 여성의 사회 생활을 뒷받침해 주기 위한 제도들이 결국은 여성의 노동력 착취라는 지배 계급의 의도를 반영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들의 주장은 성차별을 해결하는 것이 사회복지만을 통해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나치게 복지의 역할을 확대해석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현실적으로 복지제도를 통해 여성들이 예전에 비해 나은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여성의 문제를 접근하는데 있어 현대 사회가 너무 "여성복지적 측면"을 강조한 나머지 "여성 억압의 근본적인 사고의 틀"은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사회적 재생산의 주체인 여성의 역할이 지금과 같이 기이한 구도를 달리고 있는 문제에 대해 여성, 가족,국가 간의 관계가 재정립돼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하다는 사실이다.

또한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는 정책적 면에서 여성을 중심으로 한 가족의 개념을 중시한다.

더불어 가족을 여성 희생 중심의 구도로 이끌어 가족을 제대로 유지하기 위한 대안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결국 여성을 가족이란 틀에 매어놓아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고 이중적 부담의 형태로 더욱 강고하게 이중 속박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 성장기를 맞은 전후 일본 사회는 전시에 동원됐던 여성들에게 집과 일터로 돌아온 남성들을 위해 여성들의 모성을 강조하는 가족 중심적 복지개입정책을 폈다.

이는 여성의 의무인 가족을 잘 돌보는 일과 또한 저임금 단순 노동자로서의 이중 책임을 조화롭게 실행하지 않으며 안된다는 전제를 깔은 것이다.

여전히 여성의 노동력을 가장 최적의 산업 인력으로 이용하는 한편 여성의 가사 노동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통해 가정 내에서의 역할 수행도 요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모든 교육은 가정 내에서 훌륭히 수행돼야 하고 결과적으로 여성이 전담하게 되는 오늘날의 아시아적 여성관과 일맥상통하는 이러한 정책관은 결국 모든 것을 희생하는 미덕을 가진 여성을 양산해 온 것이다.

일본의 예처럼 유교적 전통을 가진 아시아 여러 나라들의 사정도 마찬가지이다.

여성으로서 받는 차별을 개선하기 위한 "성폭력특별법"이나 "여성부 신설" 등도 결국은 지금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보완책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미혼모라는 이름으로 결혼하지 않은 여성의 출산을 비하하고 사회적 성교육을 통한 예방이 아닌 시설이나 보호소 확충을 통한 치료적 접근이 지속되고 잇는 현실이다.

마치 하나의 제도 마련으로 여성들의 권리가 신장된 듯 떠들썩한 행정과 성차별적 시각을 잃지 않는 이분된 사회제도의 모순은 한시적 대안은 될 수 있으나 근본적인 해결을 촉구할 순 없다.

현 체제 내에서는 여성복지를 쥔 여성과 원래 그랬듯 사회적 지배계급을 이루는 남성은 나란히 평행 구도를 그릴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김민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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