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찾은 대전, 시내버스 안에서 내릴 곳을 놓칠 새라 걱정할 필요 없이 그녀는 종점에 살고 있었다.

탈북여성 최진이씨와의 만남은 낯선 곳이지만, 길을 잃을까 노심조차 할 필요없는 그런 것이었다.

"아직 밥 안드셨조?" 밥 짓는 그녀의 등에 대고 이것저것 학교다녀 온 아이처럼 묻기 시작했다.

중국을 통해 올 3월 한국에 온 그녀는, 남한에서 진로를 고민하다 주변의 권유로 북한여성문제에 관심 갖기 시작했고, 북한여성인 자신이 나서야겠단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내년 43세의 늦은 나이에 우리학교 여성학과 학생이 된다.

늦은 점심을 함께 들면서, 작가랄 땐 관심도 없더니 여성학 한다니 기자들이 다녀간다며 서운한 기색을 비춘다.

"기자들 먹이느라 힘드시겠어요?"란 질문에 누군가를 위해 밥을 해줄 수 있단게 요즘엔 기쁘다며 멋쩍게 웃는다.

웃음 뒤로 밥 짓는 시간, 아이 키우는 시간이 아까워 결혼 같은 건 생각지도 않고 문학에만 메달리던 독신 시절이 있었다고 덧 붙인다.

펜을 채 꺼내들기 전에 "북한여성들 많이 만나봤어요? 어때요?"라며 묻는다.

전날 만난 탈북여성 얘기를 꺼내며 자존심이 센 것 같다고 하자, "그렇죠, 자존심이 강해요. 하지만 그 이면엔 강한 피해의식이 깔려있조"라며 북한 여성문제가 너무 일반화되고 있으나 아직은 겉돌 수밖에 없는 현실을 얘기한다.

그녀가 강조한 북한여성의 문제는 가부장 문제도 남녀평등 정책도 아닌, 매일 그리고 매시간을 살아냠아야 하는 "생존"의 문제였다.

가족들의 끼니를구해와야 하는, 밥 한 끼에 몸을 팔아야 하는, 조선족 인신매매에 자청해서 들어가야 하는 북한 여성에겐 "인권, 가부장, 남녀평등"이란 페미니즘 용어들은 사치일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한다.

여성의 사회진출 그리고 몇몇의 탁아시설 뒤로 여성의 인권은 가정에서부터 뿌리째 뽑히고있었다고 한다.

독신녀 합숙소 생활을 정리하고 37세의 늦은 나이에 주변의 성화에 못이겨 17년 연상의 남편과 시작한 결혼생활은 처음부터 문제가 많았다고 한다.

결혼 6개월 만에 닥친 남편의 실업과 전처의 아들이 지기 시작한 빚으로 북한의 여느 가정처럼 가족의 생계라는 짐은 고스란히 그녀의 몫이 되었다.

평양시내를 거닐다 보면 "남편 때문에 못살겠다"는 아내들의 한숨 섞인 한풀이가 이어진다고 한다.

집안일, 육아 그리고 생계마저 여성의 몫이지만, 집안에서 큰 소릴 칠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남편이었다고 한다.

북에서도 여성들의 희생은 사회적인 미덕으로, 여성 스스로에게조차 당연시되어 있다고 한다.

대학시절 소풍 중에, 남학생들의 짐까지 떠맞아 애쓰던 여학생의 짐보따리를 빼아아 남학생들에게 쥐어줬지만, 오히려 그 여학생은 자신의 노예적 사고방식을 정당화하며 그녀를 비난했다고 한다.

스스로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 수 밖에 없는 북한여성을 떠올리며 말을 흐렸다.

얼마전에도 한 일간지 사이트에 가부장적인 북한남성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가 탈북남성으로부터 자신을 욕하는 이메일을 받았다며 웃는다.

하지만 그녀도 남편과의 어긋난 결혼생활을 쉽게 끝내진 못했다고 한다.

남편을 따라 평양에서 정진으로 퇴출 당해 짐을 싸야했다.

동료 여류문인의 "진이 동무, 평소 말하던 것과 달리 이제 보니 남편한테 끌려 다니는 것 아닌가요?"라는 빈축에도 명예와 자존심은 고단한 결혼생활을 이어 오게 하고 있었단다.

가부장의 횡포를 당당히 뿌리칠 수 있었던 것은 오히려 잃을 것이 없던 하층민 여성들이었다고 고백한다.

나진에 있는 신문사에 기자직을 구하고 이혼을 결심하던 중 중국으로 탈북을 결심하고 1년6개월 간의 숨죽인 연변 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북한 내 여성인권과 달리 난민북한여성의 인권문제는 또다른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한다.

"중국 내 여성문제는 손 쓸 수 있잖아요, 우선 손 닿는 부분부터 해결해야 되는데..."라며 또 말끝은 흐렸다.

너무 쉽게 버려지는 북한여성들의 성을 처음엔 성적인 자유로 착각했었다고 한다.

직장내 성희롱의 만연 그리고 간부들의 농락, 또 그녀는 남한의 성적보수성에 놀랐다고 한다.

"서갑숙...그게 왜? 읽어봤더니 아무것도 아니던데"라며, 차라리 여성의 욕망을 솔직하게 표현한 유미리의 책이 낫다며 권한다.

어느새 그녀의 말을 받아적던 공책에 그림자가 깃들고 있었다.

전날 만난 탈북 여성도 그리고 최진희씨도 그들의 입에선 몇 번의 죽을 고비란 말이 당연한 듯 흘러 나왔다.

불을 켜며 그녀는 "이제 북한 여성들에 대해 좀 알겠어요?" 라고 묻는다.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유치원에 아이를 데리러 가는 그녀와 집을 나왔다.

이미 한번 쯤은 들어본 문제들이었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무척이나 낯익은 문제들, 하지만 몇 마디 말로 그들을 이해하기엔 아직은 위선이란 생각이 스친다.

다만 내년 봄 이화에서 다시 그녈 만날 땐 단편적인 문제나마 널리 알려지길 바라며 서울행 기차에 올랐다.

유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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