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 프랑스 "68혁명" 때 신좌파가 내걸었던 이 구호는 어떤 권위주의도 거부함을 분명히 하고 있다.

68혁명은 1968년 3월22일 파리 대학 낭떼르 분교에서 시작됐다.

교육시설은 급격히 늘어난 학생수를 감당하지 못했고 급기야 학생들은 제대로된 교육환경을 요구하기 위해 일어섰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복지시설에 대한 문제제기만은 아니였다.

대학을 학생과 학교의 공동관리 하에 둘 것, 교수와 학생의 수평적 관계 등의 교육개혁과 성 해방 등을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동국대 구승회 교수(윤리 전공)는 "당시 학생들이 아나키즘을 상징하는 흑기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고 한다.

이후 두 달만인 5월, 수 만명의 학생 대중은 동맹휴업, 무장투쟁을 전개했다.

68혁명은 이후 노동자 대중과 연대를 통해 더욱 번져갔고 버클리, 도쿄 등 전세계 학생들에게로 그 열기가 이어졌다.

혁명을 주창하는 학생들은 국가마다 다양한 양상을 띄었다.

여성, 반핵, 환경, 소수자 운동의 신사회 운동이 성장했는가 하면, 미국의 반문화 운동, 히피, 공동체, 체 게바라 열풍 등 문화 혁명도 이어졌다.

68혁명은 낡아빠진 권위, 규율, 전통, 복종 등으로 특징지워진 전후 질서에 대한 도전이었다.

한 예로 낭떼르 분교는 남자 기숙사 여학생 출입허용, 여자 기숙사 남학생 출입금지에 대해 우리는 자유로운 성생활의 권리를 보장하라고 주장하는 등 정당한 권리를 억압하는 사회적 제도와 틀에 전면 항거했다.

혁명의 주축을 이룬 대학생들의 "어떤 굴레로부터도 우린 자유로워야 한다"는 외침은 아나키즘의 생각과 연결된다.

지금의 대학 사회에서도 이미 많은 부분에서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거대한 운동은 아니지만 학생 사회에 대해 자기정화, 대안모색 등의 움직임이 그것이다.

지난해 2천년도 이화 학생회 선거에서 수평적 네트워크를 공약으로 내세운 학생평의회 선본의 경우, 이화인들과 학생회의 새로운 관계 설정을 제안했다.

선거기간동안 한 이화인은 자보를 통해 "학생회 선거-구라가 춤을 춘다"며 학생회를 정파주의적, 반민주주의적이라는 비판을 했고, 이에 대해 "학생회의 해체를 요구하는 것입니까"란 반론도 오가는 등 학생들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다.

경북대 학생회 장례식 프로젝트는 "내가 너를 장례시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우리를 장례시킴으로써 공존의 도를 모색하자"며 학생회에 대한 비판을 날린 바 있다.

학생회 역시 학생을 대표하는 권력집단이기에 진정 자유로운 공동체를 실현하기까지 학생회를 중심으로 다양한 방식의 의사소통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대학생이 기성의 지배논리에서 벗어나 사회 모순으로부터 정의를 추구하는 것은 해방, 자유를 추구하는 아나키즘과 연관된다.

부산대 김성국 교수(사회학 전공)는 "대학생에게 도덕성을 지우는 것은 그들이 지닌 젊음에서 자유분방을, 순수함에서 사회적 정의 추구를 찾을 수 있기 때문"라고 말한다.

김민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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