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해, 그리고 누구를 위해 사람들은 글을 쓰는가? 작가란 단지 언어에 대한 최고의 조련사가 되기 위해 존재하는가? 심리학의 지식들을 동원하여 실제 사람들이 겪는 사건들을 해명하기 위해서 존재하는가? 아니면 독자들을 이야기 솜씨로 반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가?" 독일 아나키스트 작가 오스카 마리아 그라프는 [우리들은 포로들이다] 서문에서 근대적인 문화에 종말을 고한다.

작년 한해는 문화인들의 연대모임이 그 어느때보다 활발했다.

"문화담론"에 대해 한 마디씩 하는 기성 문화인들이 모여 "문화연대"를 그리고 언더에서 활동하던 이들은 "체인지21"이라는 네트워크를 조직했다.

백발부터 노랑머리까지 그들이 외친 문화개혁은 배타적인 문화구조를 바꾸보자는 것이었다.

생산과 소비가 분리되고, 근대 이후 일반인들을 소외시켜왔던 "문화를 위한 문화"에 대한 회의가 한계에 부딪혔던 것이다.

노는것, 일하는 것 그리고 문화생활에 대한 엄격한 분리에 대한 피로와 문화성역이 주는 거리감을 좁혀보자는 움직임은 민중문화에 대한 본능적인 회기를 요원했다.

문화를 자급자족하는 "원시"로 돌아가자는 네트워크 연대를조직했다.

욕망을 억압해야 나오는 것이 문화라는 프로이트의 정의처럼 근대적인 문화는 인간의 욕망을 상징으로 보편화시켜 대중의 욕구불만의 하수구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부산대 김성국 교수(사회학 전공)는 "프로이트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자연으로 그리고 다시 개인으로 회귀하는 "인간해방"의 문화로 정의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근대적인 문화구조는 문화를 중심으로 즉 권력이자 권위로 만들어 왔다.

이러한 권위에 대한 비판으로 "거장의 죽음 그리고 미술과 음악회의 폐쇠"를 고하는 동시에 "창조의 고통"을 비웃는다.

자연으로 그리고 개인에게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태아나키즘에서 현 문화의 대안 나아가 삶을 바꾸는 대안을 발견할 수 있다.

"중심의 상실"이란 포스트모던의 문화 역시 근대를 벗어난 새로운 문화에 대한 모색이란 동일한 흐름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포스트모던은 경계를 허문다는 다원주의의 힘을 얻어 더욱 모호한 방향으로 나간다고 미술평론가 김경서씨는 비판한다.

평론가들의 보편화된 이미지로 해독되어야만 하는 상징의 문화는 샤먼의 주술부터 포스트모던의 문화까지 소외와 권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아나키 문화는 단순하고 직설적인 메시지로 포용한다.

아나키스트 권구현 시인은 무위로의 회귀를 "누더기를 벗고 어머니 품으로 돌아들 가자"라고 호소할 뿐이다.

유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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