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기말고사의 추억
어느 기말고사의 추억
  • 이대학보
  • 승인 1991.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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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익스트라 교수와 계산과학
85년 가을이던가? 텍사스대학의 전산과가 어떤 뉴스로인하여 술렁거리고 있었다.

「다익스트라」가 교수로 부임한다는 것이었다.

「다이스트라」는 전산학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석학중의 하나였다.

그의 통찰력 넘친 편지한장이 「소프트웨어 공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태동하는 계기가 될 정도로 그의 명망은 드높았고 성격이 괴팍하기로도 소문이 나서 학회등에서 그에게 꼬투리를 잡히면 망신을 당하기가 일쑤라고 했다.

그가 부임하면서 개설한 과목에는 묘한 꼬리표가 붙어있었다.

그 과목은 수강 자격이 박사 논문 자격시험 통과자 둥에서 성적이 우수한 학생에 한한다는 것이었다.

그 고리표는 많은 학생들을 겁주기에 충분하여 결국 일곱명의 학생만 수강신청을 하였다.

한참을 망설이던 나도 일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기회를 놓칠수 없다는 강박관념에서 수강신청을 하였고 그래도 걱정이되어 P/F(패스혹은 F)학점으로 신청을 하였다.

C학점 이상만되면 패스로 간주되어 성적에 부담을 느낄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노교수는 인간의 지성에 특히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컴퓨터로 인하여 인간의 특권이 잠식되는 것에 대하여 강한 거부감을 토로하곤 하였다.

그는, 이미 미국에서 상용화한 「컴퓨터 사이언스」라는 단어를 경명하였다.

컴푸터는 하나의 기계에 불과하고 과학은 사물의 원리 원칙을 연구하는 깊은 학문이기 때문에 마치 「타자기 과학」혹은 「라디오 과학」이 듣기에 어색하듯 「컴퓨터 과학」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계산과학」(컴퓨팅사이언스)혹은「정보과학」이 적당하다는 지론이었다.

그는 또 우리 생활에 깊이 파고든 워드 프로세서를 거부하는 괴팍성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의 주장은 글씨란 의미만을 전달하는 기호가 아니라 그사람의 성격, 기분등을 전달하는 기능도 무시할수 없다는것이었다.

누군가가 『논문 쓰기에는 적당하지 않은가』하고 의문을 제기하자 다음과같은 의견을 피력하였다.

즉, 『워드프로세서의 등장으로 사람들은 안일하게 논물을 급조 혹은 조립하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논문의 양은 급속도로 증가하였지만 생각보다 글이 앞서는 저질의 논물들이 판을 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가 제출하는 원고는 모두 손으로 깨끗하게 정리되었고 심지어 수업시간에 내주는 교재물도 모두 손으로 정서된 것들이었다.

한학기 내내 그수업은 생동감이 있었다.

노교수는 자신이 고안한 논리방식을 이용하여 풀고자 하는 문제를 식으로 만들고 그 등식을 변환시키다 보면 그것은 어느새 마술처럼 하나의 프로그램이 되어있었다.

그 사이사이에 노교수는 컴퓨터뿐 아니라 철학, 수학, 예술등을 자유자재로 섭렵하며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새로운 각도의 해석을 피력하였다.

그 수업은 참으로 새로운 세상을 내 눈 앞에 펼쳐보여 주었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는 학기말이 가까와지도록 시험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중간고사가 엇는 경우가 종종 있기에 중간고가 기간을 넘겼을때가지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이제 학기말이 얼마남지 않았는데도 시험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학생들도 눈치만 살필뿐 누구도 그것에 대하여 말을 못꺼내고 있었다.

이대로 지나가고 학점만 잘 받을 수 있다면 공연히 말을꺼내 문제를 만들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한 학기를 한주일쯤 남겼을때 드디어 노교수가 말문을 열었다.

『이제 슬슬 시험 스케쥴을 잡아야 겠지? 각자 좋은 시간을 정해서 나하고 약속을 하게』 아뿔사, 노교수는 개인면담식의 시험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일인당 면담 시간을 무려 세시간씩이나 할당하고 있었다! 면담날짜에 그의 사무실을 찾는 나의 발걸음을 마치 도살장을 향한 암소의 그것처럼 무거웠다.

세시간동안 까다롭기로 이름난 교수와 씨름할생각만 해도 진땀이 솟아 나왔다.

그러나 막상 그와 대좌했을때 그런 걱정은 한갖 기우였음이 곧 드러났다.

노교수는 마치 친한 친구처럼 이런 저런 잡담으로 나의 긴장을 풀어주기 시작한 것이다.

수업에 대한 이야기서부터 한국사정에 대한 호기심 등으로 찬찬히 대화를 풀어나갔고 그런 중에도 그 수업에 대한 나의 의견을 꼼꼼하게 노트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한 삼십분이 그렇게 지난뒤 노교수는 나에게 문제하나를 제시하여 풀어보라고 하였다.

그로부터 두 시간여 동안 참으로 이상한 형태의 기말고사가 전개되었다.

내가 문제를 이해하고 계획을 구상하는 동안 노교수는 참을성있게 기다려 주었다.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내가 막혀서 쩔쩔맬때는 간단하게 그러나 정곡을 찌르는 힌츠를 주어 다시 풀어나갈 수 있게끔 해 주었다.

또 어땐때는 한참 풀어나가는 것을 멈추게하고, 『잠깐, 그것도 한 방법이군. 그러나 그 방법으로 해나가면 뒤에 이러이러한 문제때문에 고생할 것 같은데...이 시점에서 다른 방법이 없을까?』하는 식의 힌트로 정답으로 서서히 유도를 해주었다.

그뿐아니라 그 문제와 관련된 여러가지 분야에 대하여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것은 참으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짧은 세시간동안 나는 어떤 과목에서도 배우지못한 많은 것을 배웠고 그것은 나의 인생에서 잊을수 없는 나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문제를 다 풀고나자 노교수는 나에게 물었다.

『이제 점수를 주어야겠는데 박군은 자신의 점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나는 자신있게, 『예, 저는 이 과목을 P/F로 신청했는데 패스됐다고 생각 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노교수는 빙긋이 웃더니, 『나도 동감일세』하며 악수를 청하였다.

건물을 나서면서 나는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였다.

내가 지금까지 받아온 한국의 교육실정, 그로 인하여 야기되는 사제간의 문제들, 또 내가 추구하는 학문, 인생, 꿈 등등 벌써 건물 밖에는 어둑어둑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였고 학교 시계탑위로 하얀 초생달이 비스듬히 걸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