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의 민족문제를 진단한다

지난 3월 17일 소연방체제 존속여부를 묻는 새연방조약안에 대한 찬반투표에서 압도적 지지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현 고르바초프 집권세력ㄱ은 1985년 이래 최악의 위기 상황을 맞고있다.

이러한 위기상황은 경제상의 어려움과 정치적 갈등에 기인하는 것인데, 각 공화국들의 연방탈퇴움직임은 이러한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이와같은 현상은 소련 페레스트로이카의 성패여부를 좌우할 뿐아니라 세계적 차원의 질서재편 과정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과연 소련 민족문제의 역사적 배경과 본질적 성격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떠한관점에서 차악되어야 하는가? 소련에는 현재 크고 작은 약 130개의 민족이 혼존하고 있다.

소비에트연방은 이중 다수 민족의 명칭을 따른 15개의 연방구성공화국, 20개의 자치공화국, 8개의 자치주, 10개의 민족관구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 수많은 민족과 다양한 단위로 구성되어있는 소연방은 페레스트로이카 초기부터 예상치 못한 민족/인종분규와 공화국들의 연방탈퇴 사태를 맞게되었다.

보수파는 이러한 사태를 지나친 글라스노스트의 결과라고 비판하였으나 사실상 이것은 역사적으로 볼때 1922년 제 1 회 소비에트대회(오늘날의 소연방의 시초)이래 지속적으로 축적되어 온 내재적인 불만들이 글라스노스트를 계기로 표출된 것에 불과하다.

내재적인 불만은 대체로 다음의 요인에서 기인하였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연방구성의 명분ㄴ과 현실의 격차에서 비롯된다.

소비에트연방의 구성은 명분론적으로 「자발적으로 연방에 가입한 주권국가나 공화국의 연합」의 형태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와 민족자결주의의 결합」이라는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실상은 스탈린 이래 더욱 강화된 중앙집권적, 대러시아 우월적인 민족정책으로 인해 각 공화국의 권한이나 소수민족의 주권은 중앙에 집중되어 종속적인 형태를 띠게 되었다.

그리고 발트3국의 경우와 같이 1939년 독·소불가침조약의 비밀의정서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병합이 이루어진 경우도 있다.

이와같이 골이 깊은 중앙과 지역간의 왜곡된 연방구조는 개혁진행과정에서 지속적인 갈등요인으로 작용하였다.

그러나 현재의 연방개편 문제로 내재화된 민족문제는 역사적인요인에서만 기인하는것은 아니다.

각분야의 문제가 파편적으로 표출되었던 페레스트로이카 초기와는 달리 현재의 위기상황은 다양한 차원의 복합적인 요인에서 기인한다고 할수있다.

현 위기의 특징은 지난 6년여간 고르바초프가 추진한 정치·경제·사회·민족문제 등 총체적인 개혁과정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지 못함으로써(신사고는 예외적이라 할수있다)페레스트이카 자체에 대하여 국민들이 불만과 불신을 표출하고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한가지 특이한 현상은 페레스트로이카 모든분야에 대한 불만표출이 (민족문제가 깊이 내재된)소연방구조 개편문제로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민족문제가 정치·경제·사회들 여타 분야의 문제와 결부되어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됨을 의미 한다.

연방체제 붕괴의 위기를 맞고 있는 고르바초프는 왜곡된 연방구조와 민족정책을 개선하기 위하여 민족자결과 공화국의 주권을 대폭 강화하는 「완전히 새로운 연방조약안」을 제안했다.

그는 각 공화국의 관할권과 독자적 권력을 증대시키고, 경제·사회·문화적 영역에서의 완전한 자율성과 책임성을 부여하며, 중앙정부의 관할권과 각 공화국의 관할권사이의 경계선을 명확히 하면서, 전체 연방차원에서의 정책결정에 각 공화국의 참여와 대표성을 증진시킨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취지는 1989년 9월 당중앙위의 총회에서 채택된 민족강령초안에서도 구체화되어 나타나는데, 연방제의 기본틀을 고수하는 가운데 연방이탈(사실상 거의 불가능하게 되어있다)을 포함하는 레닌의 민족자결원칙을 재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위기국면이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며, 오히려 가속화되고 있는실정이다.

사태가 여기까지 오게된 주요한 원인을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고르바초프의 새로운 연방구성 제안은 자체의 문제점이 많고 그 제안내용의 현실적 실현이 약속과 차이를 보임에 따라 그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중심적인 문제점은 새로운 연방구성의 핵심골자라고 할수 있는 중앙연방과 공화국간에 권력 재분배규정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각 공화국은 그들의 독자적인 삶에 관계되는 모든문제를 결정하도록 되어있으며, 연방은 공화국의 위임사항과 합의된 업무를 관장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아직은 권력경계선에 대한 뚜렷한 규정이 마련되어 있지 못함으로해서 많은 충돌을 야기하고 있다.

오히려 「지나친 분리주의와 지방주의를 극복하고 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일정정도의 권력과 자원의 집중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연방중심의 집권세력(이점때문에 제안의 현실화가 지연되고 있다)과 「연방과의 확실한 분리만이 진정한 발전을 도모하는 길」이라고 주장하는 공화국 세력들간의 대립으로 인해 합리적인 수준의 권력재분에 경계설정이 어려워지고 있다.

문제는 비단 연방정부와 공화국사이 뿐 아니라 연방내 각 공화국사이에서도 불만요인이 상호대립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띤다.

예를 들면 발트 3국이나 러시아공화국과 같이 여타의 공화국보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지역은 평등을 지향하는 연방구조때문에 언제나 손해를 본다고 인식하는 반면에 비교적 덜 발달된 공화국들은 오히려 연방이 불평등하게 지역산업을 계속적으로 특화하기 때문에 주변부적인 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고 불평하고 있다.

이것은 공화국마다 연방에 대하여 가지는 불만요인이 각기 복잡 다양하다는 점을 반영하는 것으로 일률적이로 체계적인 연방구조 구축이 어려운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요인 이외에도 각 공화국의 자기 주장이 강력해지고 민주화에 대한 압력이 높아지고 있는 과정에서 대립을 평화적으로 해걸할 수 있는 공식·비공식적 통로와 상호간의 연계 메타니즘이 부재하다는 점은 소연방 구조의 문제해결에 있어 치명적인 약점이다.

결론적으로 소연방 개편문제는 고르바초프정권의 딜레마를 확연히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강력한 대통령직의 신설(개발독재의 필요성), 전체연방의 결합을 유지하려는 측면과 정치권력의 민주화와 연방의 분권화라는 개혁의 당위적 측면이 모순되고 있는 매우 어려운 과제라 하겠다.

따라서 현재의 문제는 페레스트로이카 추진세력이 연방해체를 막을 수 있는 물질적인 토대를 어떻게 마련하는가 그리고 중앙집권화의 필요성과 공화국 자주화 경향간에 적절한 긴장관계(균형)를 어떻게 이룰 수 있는가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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