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한(과학교육과3) 가을이 깊어간다.

남녘의 산들에서는 단풍이 불 붙고 있을것이다.

그러나 삶은 산위에 있지 않다.

어느 정도는 권리이고 어느정도는 의무와 습관인 우리의 삶은 산아래에서 뒤섞일때만 그빛이 어둠을 밝힐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발딛고 서야 할 현실속에서 구체적인 삶을 깨우치제 한 건 역시 산아래 에서 생긴일이었다.

진주에서 중산리로 들어가는 버스는 마침 휴가철이라 그랬는지 사람과 배낭이 뒤섞여서 발디딜 틈도 없었다.

어느 간이 정류소에 버스가 멎자 할아버지 한 분이 내리려고 뒤에서부터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나왔다.

나이가 연로하신 분이라 모두들 내리시기 편하도록 길을 비켜드려야했지만 저마다 배낭을 메고 있어서인지 쉽지아 않았다.

그런ㄷ게, 일은 그분이 내앞을 지날때 생겼다.

너희들은 뭔데 내앞을 가로막고 섰느냐. 하는 표정으로 완강하게 정면돌파(?)를 시도하시다가 그게 뜻대로 안되었는지 나를 마구미는 것이었다.

나는 사정없이 밀리면서도 우락부락한 남자들 틈에서는 가만히 있다가 내앞에 와서 그러는 모습이 얼마나 씁씁했었는지 모른다.

그때 누군가 뒤에서 외치길. 『할아버지 거 몸만 조금 옆으로 해서 나가시면 되겠는데, 너무하시네요.』 그분은 머쓱해하며 서둘러 버스에서 내렸다.

그 동작이 너무 자연스럽고 빨라서 내가 젊다는 이유로 밀면 미는데로 휘청거렸던게 억울할 정도였다.

본의아니게 자기 앞길을 막고선 젊은이들을 용서할수 없었던 분노, 시들어가는 육체속에서도 무성하기만한 분노의 독버섯, 또 그 할아버지를 원망했던 나나 주위의 등산객들 가슴속에 자리잡은 답답함. 누가누구를 미워할수도 없는 어쩔수 없는 상황에서 인간은 서로를 증오하며 제 무덤을 파는 것이다.

그런 생각들로 잔뜩 표정을 굳히고 있는데 누군가 팔을 끌며 『여기 앉으시겠어요?』하고 물어왔다.

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과 함께 앉아있던 아가씨가 자리를 좁히며 웃고있었다.

나는 버스가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어김없이 쏠려오는 다른 사람의 체중과 배낭의 무게에 넌더리를 내고있던 참이라 염치불구하고 앉았다.

『다 평소에 그 쪽이 덕이 많으셔서 그렇지요』 내 인사를 받도 그녀가 한말이다.

그때의 황송함을 어떻게 표현할수 있을까?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항상세상의 어두운 면에 민감했던 나, 방근 전에도 한 할아버지로 이해 인간성 자체에 대한 회의까지 느꼈던 나, 그런 내 옆에 앉아있는 정말 덕이 많은 그 아가씨의얼굴에는 말간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지금 그때, 내게 자리를 마련해주며 덕이 부족함을 깨우치게했던 그 아가씨와 같은 마음들이 참으로 그립다.

아니,그전에 내주위의 사람들이 마음을 쉬게 할 곳을 찾지못해 방황할때 모른척하지 말고 따뜻한 손을 내밀어 주는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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