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극 주도로 생산대중과 변혁 전면으로

김소연(민족극 연구회원) 1. 들어가는 말 일제 강점에 의해 민족 주체의 근대로의 발전을 차단당했던 우리 사회는 문화예술에 있어서도 성장하는 민중의식과 함께 발전해오던 민중의 문화예술이 철저히 파괴되고, 일제에 의한 변질된 서구근대문화의 이식으로 식민지시대 이후 「서구적 지성」이라는 소시민적 문예와 통속적 대중문화의 질족을 겪게되었다.

이렇게 특이한 근대 문화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사회에 있어 마당극운동으로부터 시작된 민족극 운동은 근대의식으로 성장해 온던 민중주체의 전통 문예에서 민중적 미의식의 단서를 잡아 변혁운동의 현장에서 그 역사적 공백을 뛰어 넘어 당대의 민중적 현실주의를 획득해왔다.

특히 87년 6월 민주화 투쟁과 7·8월 노동자투쟁을 거치면서 노동가 계습이 남한 변혁운동의 전면에 당당히 서게된 80년대 후반 이후의 운동상황에 항상 그 발전의 추동력을 벼혁운동에 실천적으로 복무함으로써 보장받았던 민족극운동은 80년대 초중반의 일시적 퇴행경향을 노동연극의 정립으로 말끔히 씻어내고 질적 고양을 이루었다.

이 글에서는 80년대 민족극운동의 흐름과 노동연극의 성과를 사려보고 현재 민족극 운동의 과제와 전망을 알아보고자 한다.

2. 80년대 초·중반의 민족극 운동 80년대 초·중반 민족극운동의 특징은 대학을 중심으로 마당극의 양적확산이다.

이시기의 대학마당극은 (당시의 운동적, 인신적 한계내에서) 이전까지의 지식인적 인종교적, 문학적 관념성을 제거하고 현실에 대한 총체적인식을 바탕으로 민중의 승리를 예견함으로써 변혁에의 신념이 운동의 유일한 추동력이었던 당시의 현실을 획득하게 되는데, 70년대 마당극들과의 이러한 인식적 차원에서의 차별성은 물론이고 70년대의 그것들이 여러 실천의 장에서 다기 다양한 실천적 양식실험을 모색했던 것과는 달리 전국의 모든 대학에서 (마치 전통탈춤이 그랬듯이)비슷한 유형의 작품들이 계속해서 생산되게 되는, 그 형식적 차원에서의 차별성 또한 가지고 있는 것이다.

80년대 초반 대학마당극의 열기는 유화국면 이후 85·86년에 이르러선 「침체」라 일컬어질 만큼 학생대중과의 결합력이나 작품생산에 있어 크게 위축되어졌다.

또한 대학밖에서 마당극운동으로 대표되는 진보적 연극운동의 결실을 지식인 중간계급 대상의 합법공간에서 80년 3월 「장산곶매」가 70년대 마당극 성과를 나름대로 집결시켜 성공시킨 후 초반을 지나면서 점차 신비주의,과거취향,현실의 파편에 대한 자연주의적 묘사등 70년대 마당극운동이 극복한 신극의 소시민성, 관념성으로의 퇴행을 보이게 되었다.

(심지어 몇몇 작품에서는 마당극적 표현법을 껍데기로 하여 억지신명, 과거취향과 결합, 봉건성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 대학에서의 침체와 전문연극운동집단에서의 이러한 퇴행경향은 (객관적 상황의 제약과 더불어) 발전의 근본 추동력인「변혁운동에의 실천적 복무」에서 일정정도 멀어지면서 빠지게된 양식집착에 따른 현상이다.

대학 마당극의 경우 억압기에 치열한 투쟁의 현장에서 획득했던 현실주의를 심화된 인식의 질과 실천적 양식모색을 담보하면서 발전시켰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방기함으로써 점차 현실주의에서 멀어진 사회과학적 관념화로 빠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70년대말부터 생산대중의 현장에서 교육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루어지던 촌극작업은 이시기에도 꾸준이 진행되면서 교육적 성과뿐만아니라 노동자, 농민의 정서와 표현방법, 인식태도, 집단성,낙관성을 질박한 형태로나마 획득하고 있어 대학과 전문연극운동집단의 경행과 달리 비록 양적 비율은 적으나마 이시기 현실주의적 연극운동의 중요한 성과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촌극작업의 성과는 민족극운동이 80년대 초중반 일시적퇴행 경향을 극복하고 노동연극으로 발전하는데(직접적인 것은 아니지만)영향을 미치게 된다.

3. 노동연극의 정립과 민족극운동의 발전 마당극운동의 태동에서부터 중요한 참고서격이었던 전통문예는 궁중문예, 양반문예가 아닌 문중주체의 문예였는데, 이는 운동의 주체들이 민족성과 함께 미중성에 주목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당시의 인석적 한계라는 제약이 있기는 하지만)「민중」이 막연한 「소외계층」으로 그려졌고, 80년대 초중반 전문연극운동 집단에 있어서도 역사발전의 주체로써 「생산대중」을 현실주의적으로 포착되지 못한채 퇴행경향을 보이게 되었다.

이러한 퇴폐현상은 자기 대상을 명확히 생산대중으로 인식하고, 생산대중의 삶과 투쟁의 현장에서 직접 그들과 만나면서 극복되기 시작한다.

7·8월 노동자대투쟁이 일어나기 전인 87년 봄, 아직 단위사업장내의 초보적인 교육이나 미조직 노동자의 조직활동 조차 이루어지기 어려운 상황이었을때 현장외곽의 일상적인 문화활동 공간에서 미조직 노동자 대상으로 초보적 노동자 의식을 가질수 있게 하는 작품이 생산되는데 「쇳물처럼」(극단 천지연)「어떤 생일날」(놀이패 한두레)이 그것이다.

이 작품들은 이전까지의 「민중주의」의 혐의를 벗고, 노동자 계급성에 입각한 낙관성을 그들의 일상정서와 노동자적 리얼리티를 통해 구현하고 있다.

88,89년에 이르면 노동운동의 성장과 함께 크게 늘어난 문호적 요구에 발빠르게 대처하는데, 이속에서 생산된 작품은 그 질과 양 모두에서 점차 민족극 운동을 주도하게 된다.

특히 이때의 노동연극이 갖는 성과의 중요한 한 측면은 그 유통과 수용의 문제라 볼 수 있다.

이전까지 민족극운동의 주관객대상이 지식인, 중간계급이었다면, 이들 작품들은 관객의 수로 보나 작품창작의 초점으로보나 노동대중이 일차적 관중이었으며 조직적 연계는 아니라 할지라도 노동조합을 통해 작품이 유통되는등 이전까지의 공연관행알 깨고 새로운 방식으로 생산대중을 만나고 있다.

수용대중의 변화, 유통의 변화등은 작품내적으로도 적극적인 현실인식과 실천적 창작자세를 바탕으로 마당극운동으로 대표되는 민족극운동의 성과를 노동자 계급성에 입각하여 계승발전 시키고 있다.

이들 작품들은 관중의 집단성, 자발성, 낙관성을 보장하고 어던 장소에서든지 기둥성있게 공연하는데 적합한 미당극 양식을 취하고 있으며 이는 단지 양식적 고려만이 아니라 인물전형을 중심으로한 극논리에 있어서도 그질을 보장하고 있다.

노동연극이 보이고 있는 성과적 인물전형의 하나로 「긍정적결함」형을 들 수 있는데 이는 모순되고 억압적인 사회구조속에사 즉자적 인산성의 차원에서는 긍정성을 갖는 것이지만 노동자 계급성에 입각한 진전된 차원에서는 계급성에서 어긋남으로서 결함으로 작용하는 성격적 측면을 말한다.

그러나 즉자적인 인간성 차원에서의 긍정성은 필연성적으로 대자적 의식화로 이어지면서 궁극적으로 긍정적인 것으로서 실현되게 된다.

긍정성을 기본적 전제이자 궁극적 귀결로서 내포하고있는 계기적 부정성이 극적 긴장을 빚어내고, 이 인물이 점차로 주체적 의식을 획득해나감에 따라 부정성이 긍정성으로 전화하면서 그 극적 긴장의 중량만큼 긍정성을 증폭해낸다.

노동연극이 획득한 인물전형과 극논리에는 민중적 품성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와 애정을 바탕으러 하는 인물성격의 진정한 변증법적 발전과정이 관철되고 있다.

이러한 노동연극의 성과는 올바른 대중노선에 입각한 것으로 전체 민족극운동의 차원에서도 중요한것이 아닐수없다.

4. 맺음말 90년 상반기 민족극운동집단에 의해 새롭게 창작된 작품 중 2/3가량이 노동연극이라는 점은 이제 양적인 면에 있어서도 노동연극이 그 주동성을 확실히 하고 있음을 뜻한다.

그러나 현실투쟁의 긴장력을 확보함으로써 현장성, 운동성을 훌륭히 견지해왔던 마당극운동-민족극운동은 90년대 새로운 차원의 정세적 대응을 맞이하며 거듭 질적 고양을 이루어낼것을 요구받는다.

지금까지 민족극운동이 그 발생에서부터 발전의 근본동력을 「변혁운동에의 실천적 복무」로 가지고 있었듯 이제 변혁운동의 전면에 당당히 생산대중들의 투쟁과 함께하며 발전해 갈 것이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