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구호비 예산이 바닥나 더이상 노숙인을 치료할 수 없다” 지난 4월26일(월) 서울시는 노숙인의 진료를 담당하는 6개 공공의료기관과 쉼터에 노숙인의 의료구호비를 제한한다는 공문을 보냈다.

서울시의 이같은 방침은 노숙인의 기본적인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노숙인은 ‘불우한 성장배경이나 취약한 가족 구성으로 인해 시설·쪽방·여인숙 등에서 머무는 사람’을 뜻한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노숙인, 즉 사람들에게 구걸하며 길거리를 떠돌아 다니는 ‘거리 노숙’은 전체 노숙인의 10%에 불과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노숙인을 부랑자·범죄자로 여기는 사회의 편견은 노숙인들이 일자리를 구하는데 어려움을 주고 있다.

또 일용직 외에는 노숙인을 받아주는 곳이 드물어 이들은 절대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다.

2003년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경제 활동을 하는 노숙인의 월평균 소득은 50∼70만원이고 10만원 미만의 소득자도 6.2%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천 공단에서 20년동안 사업을 하다 IMF 이후 노숙을 시작했다는 김학식(55세)씨는 “처음에는 일자리를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노숙인이라고 하면 무조건 멸시하는 사회 분위기에 희망을 잃었다”고 한다.

게다가 노숙을 하는 동안 몸 상태가 악화돼 왼쪽 다리는 치료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렇듯 경제적·육체적인 고통을 겪고 있는 노숙인을 구제·보호하기 위한 대책마련에는 무심하던 서울시가, 이들의 의료구호비를 제한하는 정책을 발표한데 대해 노숙인 관련 시민단체들의 비판을 받고있다.

시민단체들은 노숙인의 생존권 보호를 위한 홍보 유인물을 통해 “노숙인에게 의료문제는 생존의 문제로 노숙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해 의료이용을 제한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사망을 초래하는 것”이라 경고했다.

이에 서울시는 12일(수) 입장을 바꿔 종전대로 입원과 수술이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는 기존의 미봉책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에 불과해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는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문제가 된 의료구호비는 국고70%와 시비30%로 구성된다.

서울시 복지여성국 사회과가 제출한 2004년 서울시 의료구호비 예산 집행내역을 보면 전체 배정내역은 12억4천524만원으로 실제 노숙인 진료비에 투입되는 비용은 8억543만3천원이다.

하지만 8억543만3천원 중 4억8천만원 가량이 지난해 4/4분기 공공의료비용으로 사용돼 앞으로 사용할 예산은 남아있지 않다.

이처럼 노숙인 관련 예산 부족에 대해 ‘노숙인 복지와 인권을 실천하는 사람들’문헌준 대표는 “전체 의료구호비 12억 중 서울시가 부담하는 비용은 4억원에 불과한 반면 서울 시청 앞 잔디 광장 조성에 투입한 비용은 수십 억에 달한다”며 인간의 생존권 보다 잔디 보존을 중시하는 서울시의 인권 의식 부재를 비판했다.

노숙인 관련 시민단체의 전문가들은 노숙인은 경기침체와 맞물려 증가하기 때문에 노숙인의 문제를 개인의 탓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건강세상네트워크 시민건강팀 김순주씨는 “서울시는 노숙인 관련 예산을 확충하고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현실적인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현재 다수의 노숙인이 거주하는 노숙인 쉼터는 환경이 열악해 겨우 숙식문제를 해결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문헌준 대표는 “노숙인 복지 정책·지원을 세밀화하고 자활프로그램을 운영할 필요성이 있다”고 충고했다.

현대복지국가를 표방하는 한국 사회에서 빈곤으로 인해 고통받는 노숙인의 수는 한해 4천여명에 이른다.

서울시의 무책임한 ‘살인행정’으로 인해 사회의 보호 밖으로 내던져진 노숙인. 이들에 대한 사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대책 마련이 시급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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