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준 새 가족”
“나를 찾아준 새 가족”
  • 유리혜미
  • 승인 2004.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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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부모님이나 선생님께 들어봤을 법한 토끼와 거북이 우화. 달리기 경주에서 느릿느릿한 거북이가 결국 자만한 토끼를 이긴다는 이 우화 속의 거북이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일명 ‘거북이 시스터즈’라고 불리는 박영희(42세)·정영란(37세)씨는 현재 ‘장애여성공감’에서 각각 상임대표와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는 지체 1급 장애인으로, 이들은 한 가정을 구성해 함께 살아가고 있다.

박영희 대표는 “거북이는 느림의 동물이잖아요. 빠른 토끼가 권력자가 되는 세상에서 느리고 낮게, 새로운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겠다는 뜻으로 우리를 ‘거북이 시스터즈’라고 이름지었어요”라고 말한다.

원래 ‘거북이 시스터즈’는 박영희 대표와 정영란 사무국장 그리고 지금은 개인 사정으로 독립해 살고있는 박순천(30세)씨가 제작한 다큐멘터리의 제목이다.

2002년 만들어져 서울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된 적이 있는 이 다큐멘터리는 이들의 소소한 일상을 담아내며 얼마나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는가를 되짚어보고 있다.

97년 동거를 시작하면서 가족들로부터 독립하고 난 후 이들은 이전의 가부장적인 가족 관계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자유로움과 스스로의 가치를 발견했다고 한다.

박영희 대표는 “빨래도 내가 하면 힘들고 밥도 남이 차려주는 것을 먹는게 편하지만 내가 장애인이라고 누군가 내 일을 대신하다 보면 결국 그 사람이 나를 관리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록 지금의 생활이 몸은 피곤할지 몰라도 주체적으로 생활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기에 마음은 편안하다는 것이다.

또 함께 사는 정영란 사무국장이 “이곳은 언니의 공간”이라며 자신의 독립적인 공간을 인정해 줄 때 행복하다고 말한다.

과거의 가족은 가부장적이었기 때문에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수직적일 수밖에 없어서 자신만의 독립적인 공간을 인정받기란 불가능했다고 전했다.

이들과 같은 대안가족이 알려지면서 가족의 다양성을 받아들이려는 사회적 인식이 확산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는 이들을 소외시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박영희 대표는 “가족이란 단지 밥상머리를 함께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며 “서로가 서로를 지지해 주는 관계, 억압적이기 보다는 자애로운 관계로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동거를 한다면 가족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제정된 ‘건강가정기본법’은 건강가정에 대한 기준이 불분명한 상황에서 기존의 가부장적인 틀 밖에 있는 한부모·동거가족 등은 모두 건강하지 못한 가정으로 낙인찍고 있다고 비판했다.

메이데이 전야제를 위해 바쁜 걸음을 옮기는 그와 그의 가족 정영란 사무국장은 비록 휠체어에 의지한 몸이었지만 서로 의지하면서 힘이돼 주기에 누구보다 밝고 당당했다.

서로 노력하면서 평등한 관계의 가족을 만들어 가는 두 ‘거북이’의 인생은 그래서 아름답고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