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가족 이데올로기’ 시대에 역행, 다양한 가족 인정·지원하는 제도 필요

‘생물학적 맹목성이라니!/가족이기 때문에/불합리에도 불구하고/조건없이 받아들이는가 하면/가족이기 때문에/지극히 작은 것도 용서하지 못한다/가족이 풀 수 없는 매듭이 아니기를/나는 바란다…’ 이문숙씨의 ‘가족을 넘어’의 일부분인 이 시는 전통가정형태를 비판하며 현대 사회에서 가족이 다양화 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저출산 세계1위·OECD 국가 중 이혼율 2위 등으로 한부모 가족·독신 가족 등이 급증하면서 부부-자녀만으로 이뤄진 전통적 핵가족 개념을 넘어서 다양한 가족형태가 나타나는 현상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또 혈연과 결혼을 넘어서는 이웃공동체 또는 대안가족공동체 등도 나타나고 있다.

독신 여자 세명이 함께 여성공동체를 꾸려 살고 있는 원사씨는 한국여성민우회 홈페이지를 통해 “결혼관계가 아닌 다양한 인간관계를 통해 자유와 행복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고 말한다.

또 갈 곳이 없는 아이들과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 ‘들꽃피는 마을’의 선생님 양진희씨는 “기존의 가정생활에 상처를 받은 아이들은 이곳에서 안정된 생활을 하며 꿈을 길러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들꽃피는 마을과 같은 그룹홈은 합법적 가정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들이 통장을 만들거나 의료혜택을 받는 점 등에 있어 불편을 겪고 있다.

우리 학교 이재경 교수(여성학 전공)는 “가족의 형태가 다양화 되고 있으므로 이러한 가정 생활이 제도적으로 지지되고, 지원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가는 다양한 가족 형태가 나타나는 것을 전통적 가부장적 ‘가족해체’와 가족기능 약화로 나타나는 ‘가족위기’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에 국가는 ‘가족해체’를 예방하기 위해 출산을 유도하는 각종 인센티브나 자녀양육의 부담을 덜어주는 보육정책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와중에 지난 1월 국회를 통과한 ‘건강가정기본법’은 ‘가족위기’에 대한 대안책으로 마련됐다.

하지만 ‘건강가정’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건강한 가족과 그렇지 않은 가족을 위계화시킨다는 점과 법자체의 법적 위헌성과 모순성, 가족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우려 등 많은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이런 건강가정기본법 제정의 흐름에 비춰 지난 29일(목) 우리 학교에서는 ‘우리 시대의 행복한 가족(?)이야기’를 주제로 학술제가 열렸다.

학술제에 참가한 「현대가족이야기」의 저자 조주은씨는 건강가정기본법의 제8조에 명시된 ‘모든 국민은 혼인과 출산의 사회적 중요성을 인식하여야 한다’는 조항에 대해 “혼인과 출산이라는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규범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제9조에 명시된 ‘가족구성원 모두는 가족해체를 예방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는 규정은 “특정한 가족 유형에서 벗어난 가족은 불완전하고 문제있는 것으로 인식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다름으로 닮은 여성연대’ 진경씨는 장애여성과 레즈비언 가족의 현실태를 분석하며 그들의 권리보장을 위해 사회적 인식 변화와 더불어 법적 제도마련이 시급하다고 이야기했다.

학술제에 참여한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가족정책은 모든 가족을 특정가족으로 만들기 위한 사업이 아닌 다양한 가족형태를 수용할 수 있는 법적 제도라고 주장했다.

우리 사회의 ‘가족위기’는 전통가족형태가 ‘해체’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특정한 가족형태만 정당화하는 국가의 이데올로기 작업으로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이루며 사는 이들의 자유로운 삶을 보장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 사회가 당면한 위급한 ‘가족위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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