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어떻게 경찰에 잡혀가 강제 추방당할지 모르는 상황에 그들은 불안해 했다.
“우리가 모국에서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어제도 이 근처에서만 3명이 붙잡혀 갔다.
오도가도 못하는 독에 갇힌 생쥐 꼴과 다름없다”는 한 할아버지의 말에 여기 저기서 하소연이 터져 나왔다.
한국에 온지 2년쯤 됐다는 ㅅ(58세) 할아버지는 “한 달간 목수일을 했지만 사장이 도망을 가 월급을 받지 못했다.
현재 신고를 해놨지만 2년을 기다려도 아무런 소식이 없다”며 울분을 토했다.
‘중국동포의 집’에서 자신과 같은 불법체류 중국동포를 돕고 있는 박춘화(40세)씨는 “중국동포들은 대개 한국에 올 때 천만원씩 빚을 지고 오는데 불법체류자가 돼 빚도 못갚고 강제추방 당하는 것은 죽느니만 못하다”며 “‘중국동포의 집’에서만 지금까지 천여 명의 장례식을 치뤘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재외동포법이 개정됐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나아진 것은 하나도 없다는게 이들의 한결같은 이야기였다.
지난 2월9일(월) 국회는 3년 이상 논란을 거듭한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재외동포법)’을 개정했다.
이번에 개정한 부분은 제2조2항으로 외국국적동포의 범위를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에 국외로 이주한 동포까지 확대했다.
따라서 이전까지 재외동포 범위에서 배재했던 중국동포 200만 명과 구소련지역동포 50만 명이 동포로 인정받게 됐다.
“이번 개정이 동포로 인정받지 못하던 중국·구소련지역 동포를 우리의 동포로 인정한 점에서는 바람직하다”는 중국동포의 집 김해성 목사의 말처럼 재외동포법 개정을 위해 84일간 농성을 벌인 중국동포를 비롯한 관련 시민단체들은 이번 개정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일본 지역의 무국적 동포 20만 명은 여전히 재외동포 범위 밖으로 밀려났고 ‘자유왕래 허용·재외동포체류자격 부여’와 같은 관련 시행령 및 하위규칙 개정이 이뤄지지 않은 점은 여전히 문제로 남아있다.
특히 재외동포로 인정한 중국·구소련지역 동포들이 여전히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재외동포연대추진위원회 배덕호 사무국장은 “지난 5일(금) 노무현 대통령이 재외동포법을 공포했음에도 불구하고 하위법령을 마련하지 않는 것은 재외동포를 이전처럼 외국인으로 대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김해성 목사도 “미국이나 유럽 지역의 동포는 인정하면서 다른 지역 동포들은 동등하게 대우하지 않는 것은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이다”며 정부의 차별적인 정책을 비판했다.
이미 전세계 많은 국가들이 재외동포를 보호하기 위한 법률을 제정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경우 870만 해외 유태인에게 ‘귀환의 권리’를 인정하고 이스라엘 국적을 부여해 기본적으로 내국인과 동등한 지위 및 권리를 보장하고 있으며, 일본은 해외 이주 일본인의 현지 후손인 ‘일계인’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한없이 자국 내 취업을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는 달리 재외동포 대부분이 불법체류자라는 점을 악용해 임금을 주지 않거나 욕설과 구타를 서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인격적 모독은 재외동포 사이에서 한국인에 대한 악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있어 “한국인은 꼴도 보기 싫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에서는 우리나라 경제도 안좋은데 돈을 벌기위해 모국을 찾아온 ‘그들’까지 보호하면서 ‘우리’의 일자리를 뺏길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국내에 체류하는 대부분의 동포들은 내국인이 기피하는 3D 업종에 종사하고 있어 인력난이 심각한 중소기업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있다.
지난해 11월 한길리서치가 전국 20세 이상의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재외동포법 개정 관련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7.4%가 중국·구소련지역 재외동포를 우리의 동포로 인정한다고 답했으며, 내국인이 꺼려하는 3D업종에 재외동포가 취업하는데 대해 82.5%가 찬성한다고 밝힌바 있다.
재외동포법 관련 시행규칙 제정을 담당하고 있는 법무부와 외교통상부의 무책임한 태도에 대응해 시민단체들은 ‘불법체류 동포 사면 청원서’를 제출하는 등의 활동을 벌일 계획이다.
배덕호 사무국장은 “무국적 재일동포들을 배제한 부분에 대해서는 헌법소원을 제기하고 불법체류 재외동포들의 합법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고 밝혔다.
또 정부에 재외동포 관련 사안을 전담하는 ‘동포처’나 대통령 산하 ‘재외동포위원회’의 신설 등을 요구해 재외동포에 대한 장기적인 대책 마련에 집중할 예정이다.
‘진정한 동포’로 인정받는 그날까지 재외동포들의 숨가쁜 투쟁은 오늘도 계속된다.
이들이 모국의 당당한 주체로 거듭나 크게 숨쉴 수 있게 신속한 시행규칙 개정과 국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