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평등의 새하늘을 열다

하늘이 열리는 날, 서울 시청 앞은 분홍 물결로 넘실댔다.

개천절(開天節)이었던 지난 3일(금) 분홍옷을 입고 고무장갑을 낀 여성들이 호주제 없는 세상·양성평등의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시청 앞에 모인 것이다.

대한민국여성축제추진위원회 고은광순씨는 “올해 안에 호주제폐지안의 국회통과를 1차적 목표로 하고 나아가 평화와 평등의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같은 축제를 열게 됐다”고 밝혔다.

신명나는 풍물패의 공연으로 시작한 ‘새하늘·새땅을 여는 대한민국 여성축제’는 ‘모이자! 놀자! 바꾸자!’란 축제의 부제가 보여주듯 시종일관 흥겨운 분위기였다.

시청 앞 광장 곳곳에서는 여성인물을 화폐에 시민연대·이화민주동우회 등 각종 시민단체들이 여성인권 신장을 위한 서명을 받거나 페이스페인팅 등의 행사를 벌였다.

유채지나 영화평론가는 “이번 축제는 지난 ‘안티미스코리아’에 이어 각종 퍼포먼스·공연 등 문화적인 요소가 가미됐다”며 “이는 호주제 폐지 등 여성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 해결을 위해 여성이 주체가 돼 즐겁게 즐기면서 만드는 축제문화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첫째마당은 방송인 오한숙희씨의 사회로 호주제 폐지 카드섹션·낙태 여아 살풀이가 진행됐다.

화투 모양의 카드 하나 하나에는 그동안 호주페 폐지를 노골적으로 반대해온 국회의원들의 이름이 ‘피박이야! 김학원’, ‘나가있어 최병국!’ 등으로 차례차례 나타났다.

이어 낙태당한 여아를 위한 살풀이 퍼포먼스 ‘에밀레’가 진행되자 모든 카메라의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됐다.

여성주의 퍼포머 김한채하씨는 “이 공연은 호주제가 낳은 남아선호 사상에 의해 낙태당한 수많은 여아들과 낙태를 경험한 여성들을 위한 것”이라고 이번 퍼포먼스의 의의를 전했다.

이어 유관순 복장을 하고 태극기를 든 고은광순씨가 분홍 천을 두른 포크레인을 타고 ‘새 개천절향가’를 낭독하면서 둘째 마당의 문을 열었다.

“여자남자 옆에서서 손잡으면 더욱좋지/…/남자대장 이제그만 양성평등 평화세상/시월삼일 개천절에 새하늘을 열어보자” 새 개천절향가 낭독에 이어 ‘10대- 아들과 차별하지 마세요, 우리가 제일 예뻐요. 20대-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부터 내 몸을 자유롭게. 내 몸의 주인은 내가 돼야 한다’ 등 세대별 대한민국 여성헌장 선포식이 이어지면서 축제의 분위기는 더욱 무르익어 갔다.

이날 축제에는 여성 뿐 아니라 남성들도 함께 스태프 혹은 관람자로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여성학 수업시간에 교수가 추천해서 오게 됐다는 김정훈(서울산업대·4)씨는 “여성학 수업을 통해 여성문제에 대해서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가슴으로는 동감할 수 없었던게 사실”이라며 “이번 축제에서 ‘여성인물을 화폐에 넣자’는 운동 등을 알게 되면서 일상에서의 여성 차별을 공감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늘이 열리는 날 이 땅의 ‘분홍 파워’들은 광장으로 나와 양성평등의 새로운 하늘·새땅이 열리기를 만천하에 신명나게, 흥겹게 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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