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민주인사 입국 막는 국가보안법 폐지돼야

“각기 개별적으로 보이는 대나무들이 사실은 땅 속에서 죽순을 통해 서로 연결돼 있는 것처럼, 제가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던 것은 이 땅의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서 애쓰신 분들과 하나로 연결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 지난 22일(월) 망명생활 37년만에 고국땅을 밟은 재독철학자 송두율 교수의 귀국소감이다.

지난 22일(월)∼27일(토) 서울에서 열린 ‘해외민주인사 초청한마당’에 송두율 교수와 해외한인 통일위원회 선우학원 회장이 초청돼 입국함으로써 그간 우리사회에 잊혀져 있던 해외민주인사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앞서 19일(금)∼22일(월) ‘한가위맞이 해외민주인사 고국방문’ 행사를 통해 그동안 입국이 금지됐던 재독문화원 김성수 원장·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 양동민 부의장 등 해외민주인사 29명이 고국 방문의 기회를 가졌다.

이번에 입국한 해외 민주인사들은 7∼80년대 독재정권에 맞서 유럽·일본 등지에서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힘써온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30년이 넘도록 ‘반체제 인사’로 규정돼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원치 않는 타향살이를 해야만 했다.

‘해외민주인사 귀국보장을 위한 범국민추진 위원회’ 집행위원장 임종인 변호사는 “독재정권은 자신들의 독재를 비판하는 해외의 반독재 투쟁의 싹을 잘라내기 위해 잠입·탈출, 찬양·고무 등 국가보안법의 모호한 규정을 이용해 이들을 ‘친북인사’·‘반국가단체’로 낙인찍었다”고 말했다.

해외민주인사가 하루아침에 평가절하된 가장 대표적인 예로 지난 1973년 독일로 파견된 광부·간호사·유학생을 중심으로 결성된 ‘민주사회건설협의회’를 들 수 있다.

이 단체는 유신헌법에 반대하는 활동을 전개하고 5·18 광주민주화항쟁의 진실을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는 등 가장 신랄하게 한국정부를 비판했다.

그런데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정부는 이를 ‘반체제 활동’으로 규정해 모두 입국을 금지시켰다.

재독민주인사 김성수 박사는 “한국에 있지도 않은 사람이 머나먼 타국 땅에서 어떻게 간첩활동을 벌일 수 있겠냐”며 “우리는 오직 조국의 민주화와 평화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에서 행동한 것 뿐”이라고 애통한 마음을 털어놨다.

일본에서의 민주화 운동 역시 독재 정권의 탄압으로부터 예외일 수는 없었다.

박정희 정권의 탄압을 피해 일본으로 간 김대중 전 대통령과 재일동포를 중심으로 1973년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회의(한민통)가 결성됐다.

이후 그들은 통일 운동을 활발히 펼쳤지만 정작 그들에게 남은 건 ‘반국가 단체’라는 오명 뿐이었다.

이러한 해외민주인사들에 대한 처우는 민주정권으로 교체되고 한반도에 남북화해의 기운이 점차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면서 ‘민주인사들을 위한 민주화운동보상법’이 제정되고 민주화에 공헌했던 인사들이 주요 공직자리를 맡기도 했으나 정작 해외민주인사들은 제외됐다.

우리 학교 김수진 교수(정치외교학 전공)도 “이들의 입국은 여러차례 우여곡절을 겪고 있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진전되고 있다는 증거이긴 하지만 진정한 민주주의는 이들을 포용함으로써 가능하다”고 전했다.

이번 해외민주인사들의 고국방문은 과거 독재정부에 의해 평가절하됐던 그들의 민주화 업적이 재평가됐다는데에 그 의의가 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명예회복이 제대로 되기 위해선 궁극적으로 국가보안법 폐지가 선행돼야 한다.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한 우리사회의 민주주의는 한계에 봉착할 뿐”이라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박형규 이사장의 말처럼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남·북간 왕래가 자유로워지고 있는 시점에 국가보안법은 사상의 자유를 제한하는 시대착안적 법률일 뿐이다.

우리 사회에 미완성으로 남아있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선 무엇보다 민주화를 위해 힘쓴 해외민주인사들의 귀국보장과 역사적 재평가가 시급하다.

분단이 낳은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인 이들이 더 이상 고국을 그리워하다 타국땅에 묻히지 않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함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룩해야 할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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